[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리본을 훔친 남자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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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버지니아주 샬러츠빌 사건의 나비 효과 때문인지, 그 주의 어떤 신부가 40년 전 일을 세상에 고백했다. 신문 기고를 통해서였다. 자신이 백인우월주의 단체인 KKK 단원으로, 흰 가운에 흰 두건을 쓰고 불붙은 나무십자가로 흑인들을 위협하고 사제 폭탄을 만들어 그들을 협박하는 행동들을 했다는 것이다. 신부가 극단적인 KKK 단원이었다는 것도 놀랍지만, 고백은 그래서 더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프리랜서 기자가 그 신부가 소속된 알링턴 교구 사무실에 과거 행적과 관련한 것을 문의하고 난 후에 한 고백이라면, 얘기는 사뭇 달라진다. 진정성의 문제가 제기되는 탓이다.

그 신부의 고백을 루소의 유명한 고백과 비교해보면 진정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루소가 ‘고백록’을 쓰려고 결심한 건 쉰 살이 넘어서였다. 누가 폭로하겠다고 위협한 것도 아니고 누가 쓰라고 종용한 것도 아니었다. 그의 표현대로 ‘가증스러운 범죄’를 그저 고백하고 싶었을 따름이다.

열여섯 살 때였다. 그는 어느 부잣집 하인으로 들어가 일하다가 리본을 훔쳤다. 리본이라니까 사소해 보이지만 핑크색과 은색이 뒤섞인 아름다운 리본이었던 모양이다. 그가 갖고 있다는 것이 금세 들통났다. 그러자 그는 부엌에서 일하는 하녀 마리옹이 리본을 훔쳐 자기한테 줬다고 둘러댔다. 그녀는 그런 적이 없다고 울먹였지만, 그녀의 말과 루소의 말이 대립하다가, 사건은 두 사람이 해고되는 것으로 끝났다.

루소는 미안했다. 몇십 년이 지나도 미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그래서 늦게라도 고백하고 싶었다. 여기에서 그의 진정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의 고백에는 함정이 있다. 그는 리본을 훔친 것이 자신이 좋아했던 그 하녀에게 주기 위해서였고, 그녀에게 책임을 돌린 것은 무서워서 그랬다고 한다. 그의 고백은 용기로도 들리지만, 묘한 변명과 자기합리화로도 들린다. 몇십 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그는 다시 한 번 그녀를 이용의 대상으로 삼았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때는 비겁함 때문에 그랬고, 이번에는 일종의 도덕적 자기과시 때문에 그랬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때는 어떤 말로도 해소할 길 없는 미안함이라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것을 상품으로 만들었다. 그러면서 의도와는 다르게, 끝이 없어야 할 미안함에 마침표가 찍혔다. 그리고 고백이 피해자인 그녀가 아니라 일반 독자를 향하는 아이러니, 여기에서 그의 진정성은 시험을 당한다. 이것이 타인에게 가한 상처나 미안함이 글로 바뀔 때 수반되는 위험이 아닐까.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
#루소#고백록#진정성#도덕적 자기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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