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판권의 나무 인문학]큰 열매는 먹지 않는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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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감나무

한국인에게 친숙한 감나무. 가장 큰 감 열매는 따지 않고 남겨 두는 게 관례였다.
한국인에게 친숙한 감나무. 가장 큰 감 열매는 따지 않고 남겨 두는 게 관례였다.
감나뭇과의 갈잎큰키 감나무는 한국인의 정서를 담고 있는 대표적인 나무다. 우리나라 농촌 어디서든 감나무를 만날 수 있을 뿐 아니라 가을과 겨울의 중요한 간식이기 때문이다. 특히 전통시대의 홍시(紅柹)는 아주 귀한 음식이었다. 그래서 홍시는 자주 효를 상징하는 열매로 등장한다.

유천우(1209∼1276)의 아우가 권신(權臣) 김인준(?∼1268)을 제거하려 형에게 상의했다. 그러나 형은 응하지 않았다. 유천우의 아우는 혼자 일을 시도하다가 실패했다. 김인준이 유천우에게 아우가 자신을 죽이려 한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를 물었다. 이에 유천우는 알고 있었지만 노모의 마음을 상하게 할까 공모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김인준은 “전에 손님들에게 홍시를 대접하자 앉아있던 사람들이 맛있다고 했지만 공만 그것을 먹지 않고 어머니에게 갖다 드린다고 했다. 나는 그것을 보고 유천우가 어머니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정부에서는 김인준의 말을 믿고 유천우를 벌하지 않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서원을 세운 주세붕(1495∼1554)은 아버지가 홍시를 좋아했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차마 홍시를 먹지 못했다. 전래동화 ‘곶감과 호랑이’에서 보듯 감나무 열매를 말린 곶감도 훌륭한 음식이었다. 곶감은 떡에 비유하여 시병(柹餠), 곶감의 흰 분은 눈에 비유하여 시설(柹雪)이라 한다.

중국 당나라 단성식(段成式)의 ‘유양잡조(酉陽雜俎)’에는 감나무에 대한 7가지 장점, 즉 칠절(七絶)을 언급했다. 첫째 오래 살고, 둘째 좋은 그늘을 만들고, 셋째 새가 집을 짓지 않고, 넷째 벌레가 없으며, 다섯째 단풍이 아름답고, 여섯째 열매가 먹음직스럽고, 일곱째 잎이 크다.

당나라의 정건(鄭虔)은 자은사(慈恩寺)에서 감잎에 글씨를 연습했다. 이를 ‘시엽임서(柹葉臨書)’라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고려시대 감나무는 경북 상주에 살고 있고,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천연기념물 감나무는 경남 의령에 살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감나무의 열매를 매우 좋아했지만 모두 따지 않고 큰 것 하나 정도를 남겨두었다. 그 이유는 ‘주역(周易) 산지박괘(山地剝卦)’ 가운데 ‘석과불식(碩果不食)’, 즉 ‘큰 열매는 먹지 않는다’는 구절처럼, 까치를 비롯한 새들의 양식이나 다음 해의 종자를 위해서였다. 나의 어머니는 ‘남에게 좋은 것을 주라’고 자식들에게 유언했다.

강판권 계명대 사학과 교수
#감나뭇과#감나무#감#홍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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