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名문장]연출자 임영웅의 50년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5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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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상원 정동극장장
손상원 정동극장장
“고도 씨가 보낸 거지? 오늘밤에는 못 오겠다는 얘기겠지? 하지만 내일은 온다는 거고? 내일은 틀림없겠지?” “네.” ―사뮈엘 베케트, ‘고도를 기다리며’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블라디미르와 소년의 대사다. 베케트의 대표적인 부조리극(현실의 불합리와 존재의 근원을 탐구하는 연극)이다. 1990년도 초반 덕수궁 문예진흥원 자료실에서 대본을 복사해 벤치에 앉아 읽어 내려갔다. 솔직히 무슨 내용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산울림소극장에서 연극으로 관람했다. 내가 읽었던 글자들이 무대 위에서 살아 움직이며 나를 흔들어댔다. 그때의 연극은 오랜 기간 내게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질문들을 던져주곤 했었다. 연극이란, 부조리극이란, 관객이란, 인생이란? 그 해답을 아직 얻지는 못한 것 같다. 작품을 만들고 또 만들고 정신없이 달려오면서 그 질문을 잊고 살아왔던 것 같다.

이 작품은 초연 이후 50년간 1만5000회 공연을 하고 22만 명의 관객을 만났다. 50주년을 맞이해 다시 공연한다고 한다. 임영웅 선생은 무려 50년이라는 세월 동안 이 작품을 연출해 왔다. 한 작품을 50년간 지켜오고 공연한 것이다. 나를 돌아보며 여러 가지 생각에, 존경스러움에 마음이 뭉클해진다. 연출 인터뷰에서 그는 “기약도 없이 뭘 저렇게까지 기를 쓰고 기다리나 하는 것이 인생 아닌가 싶다”라고 했다.

5G 시대가 왔다고 한다. 내가 살고 있는 환경에서는 5G의 속도를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는 잘 모르는 5G를 따라가야 할 것 같은 강박을 느끼면서 살아간다. 나의 삶 또한 그 속도에 맞춰 살아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번 50주년 공연을 꼭 보려고 한다. 공연을 보면서 세상이 따라오라고 부추기는 속도가 아니라 나만의 삶의 속도를 찾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또한 내가 기다리는 고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려고 한다.

손상원 정동극장장
#임영웅 선생#고도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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