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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구 기자의 對話]“건강하십시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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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구 기자의 對話]“건강하십시다… 고맙습니다…”

이진구 기자 입력 2018-11-05 03:00수정 2018-11-05 0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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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 전 만난 신성일의 마지막 모습
그는 “내 건강이 회복되는 시기를 내년 5, 6월경으로 보고 있는데 그때부터 촬영을 시작해 내년 10월에 열릴 부산국제영화제에 꼭 작품을 출품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기자에게 “안성기 박중훈과 함께 출연하는 작품이라면 기대할 만한 것 아니오?”라며 강한 의지를 보였다. 아쉽게도 뜻을 이루진 못했지만 그의 유지를 이어서 이 작품이 완성된다면 하늘에서도 기뻐하지 않을까. 화순=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 “아침 일찍 수간호사가 신문을 가져와서 단숨에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건강하십시다. 신성일.” 그의 인터뷰 기사가 게재된 지난달 20일 오전, 그로부터 잘 읽었다는 내용의 문자가 왔다. 전화를 했지만 쉬는 날이라 자고 있던 탓에 전화를 안 받자 대신 문자를 보낸 것이다. 답신을 하자 멀리서 그의 음성이 들렸다. “아, 이 기자, 기사 잘 봤어요. 사진도 좋고…. 영화 장면처럼 만들었더군요. 하하하. 우리 다시 또 봅시다.” 》
 
이진구 기자
그것이 사실상 그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인터뷰가 될 것이라고는 당시에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20여 일 전인 지난달 17일 인터뷰를 하기 위해 만났을 때만 해도 그는 내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할 작품에 대해 기자와 함께 이야기꽃을 피웠기 때문이다. 전남 화순의 한 요양병원에서 요양하던 그는 기자가 도착했을 때 마침 병원 뒤뜰에 있는 벤치에 앉아 있었고, “어이∼ 여기요, 여기∼ 잘 왔어요”라며 넉넉한 미소로 반겨줬다. 전날까지 서울에는 비가 내리고 시월 중순답지 않게 전국이 몹시 추웠지만 이날은 닫힌 마음마저 푸근하게 열릴 정도로 부드러운 가을날이었다. 볕이 무척이나 좋았던 그날, 붉게 물든 뒷산의 단풍을 배경으로 한 그의 은발을 보며 왜 그 옛날 보았던 홍콩 영화 ‘가을날의 동화’(1987년)가 떠올랐는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그만큼 멋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여기 볕이 참 좋아요. 볕이 좋으면 늘 걷지요.”

인터뷰를 요청했던 것은 그가 내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할 인생의 마지막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폐암 투병 중이라 인터뷰가 쉽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인터뷰 취지를 말하자 그는 “얼마든지 좋다”며 흔쾌히 승낙했다. 그의 건강에 대해서는 실례인 것 같아 굳이 묻지 않으려 했다. 단지 인사를 나눌 때 가볍게 “건강은 어떠신가요”라고 물었는데, 그는 뜻밖에도 “조금 전이가 돼서…”라고 말했다. 요양병원에는 3월경 왔다는데 지인이 운영하는 곳이라고 했다. 그리고 건네준 명함에는 이 병원의 명예원장 직함이 적혀 있었다.

그가 천생 영화배우라는 것은 만나자마자 알 수 있었다. 그의 방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는 이 병원 시청각실에서 매주 금요일 오후 7시에 상영하는 영화 제목을 적은 A4용지가 붙어 있었다. 9월부터 11월까지였는데 모두 그가 주연을 맡은 작품들이었다. 이 영화들을 광주 등지에서 찾아오는 지인들과 함께 매주 보고 있다고 했다.

“옛날에는 서울에도 극장이 단성사 국제극장 등 6개 정도밖에 없는 데다 너무 바빠서 내가 주연인데도 정작 나는 못 본 작품이 많았지요. ‘맨발의 청춘’도 찍어 놓고는 못 보고 있었는데, 광화문에서 다른 촬영을 하다가 마침 쉬는 시간이 있어서 잠깐 들어가서 봤으니까요.”

10월 20일자 22면.
이야기가 내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할 작품으로 넘어가자 그의 눈에는 생기가 돌았다. 중심 촬영 장소에 대해서만 20여 분을 설명했으니…. 대구에 살고 있는 동생뻘 되는 지인의 집 응접실인데 그가 구상하는 작품의 중심 공간이라고 했다.

“그 집 응접실이 동서로 긴 모양인데 기막히게 잘 만들었어요. 10여 명이 앉을 수 있는데…, 촬영하기도 무척 좋죠. 그랜드피아노도 있고, LP판도 많고, 진공관으로 된 오디오도 있고….”

영화는 유명 사진작가와 그의 사위들, 외손녀 등 3대의 가족 이야기라고 했다. 시나리오는 최종 수정 중이고 배역도 대부분은 어느 정도 정해진 상태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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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진작가 역이고 부인 역으로는 처음에는 윤정희 씨를 생각했는데 요즘 몸이 안 좋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고은아 씨에게 물었더니 너무 오래 출연을 안 해서 자신이 없다고 해요. 문희 씨도 생각했는데 거기도 자신이 없다고 하고…. 그래서 이장호 감독과 자녀들에게 물었더니 문숙 씨를 추천하더라고요. 나는 그 여인의 자연주의적인 이미지가 참 좋아요. 이만희 감독의 ‘태양을 닮은 소녀’라고 1975년 데뷔작도 나랑 같이 했고….”

영화를 설명하는 그의 눈은 암 환자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예리하게 빛났다. 목소리도 처음에는 다소 지친 듯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더 활기를 띠었다. 특히 그의 사위 역으로 나올 두 배우를 설명할 때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후배들”이라며 눈에서 꿀이 떨어지는 듯했다.

“나는 그 집의 주인이자 유명 사진작가, 스마트폰도 안 쓰고 가능하면 유선전화를 쓰는 아날로그 세대를 대표하죠. 맏사위는 안성기인데 직장생활에 찌든 증권회사 이사, 둘째 사위는 박중훈으로 사업하다 내려와서 세계 최고의 포도주를 만들겠다고 하는 역할이죠. 이 둘은 디지털 세대를 대표하고…. AI 연구원인 외손녀까지 3대의 사랑과 갈등이 주 촬영 장소인 응접실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입니다.”

인터뷰는 그의 방에서 유부초밥과 김밥을 함께 먹으며 진행됐다. 인터뷰에 집중해서인지, 병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유부초밥을 두세 개밖에 먹지 않았다. 인터뷰가 중반을 넘어갈 때쯤이었다. 신군부가 들어선 뒤의 영화 활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그는 문득 생각났다는 듯 “그때 한 여인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먹먹하다”고 했다. 당시 서울 충무로의 한 영화사에서 경리로 일하는 아가씨가 있었는데 한창 5·18민주화운동이 벌어지던 그때 전화가 왔다는 것. 광주가 고향인 그녀는 마침 그때 그곳에 있었다고 한다.

“그때는 보도 통제로 서울에 있는 우리는 간첩들이 내려와 폭동을 일으킨다는 식으로 듣고 있을 때였어요. 근데 그 사람한테 전화가 와 ‘세상에 이럴 수가 있느냐. 군인들이 사람을 난도질하고 죽이고 있다며 통곡을 하더라고. 나중에 시간이 지난 뒤 내려갔는데 아무리 찾아도 그 사람을 찾을 수가 없더군요. 그때는 내가 지방에 가면 소문이 날 때였거든요. 서울에 올라와서도 백방으로 찾았는데 못 찾다가 한참 후 소식을 들었는데 수녀가 됐다고 하더군요. 그때 충격으로….”

다소 무거워진 분위기를 돌리려고 젊은 시절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어떻게 하다가 세금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는 “당시에는 탈세가 많았는데 나는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1960, 70년대에는 영수증 처리가 잘 안 될 때니까…, 개념도 없고…. 그래서 탈세가 무척 많았지요. 그런데 우리 집에는 1년에 두 번, 상반기 하반기로 용산세무서 공무원이 찾아왔어요. 근데 올 때 내가 출연한 영화 신문광고를 들고 오는 거야. 광고에 주연 신성일이라고 쓰여 있으니까. 그러고는 이 영화, 저 영화 짚으면서 걷어간 거지요. 하하하. 언젠가는 납세 1등인 적도 있었는데, 아마 박정희 대통령이 그런 모습을 보고 굉장히 좋아했던 것 같습디다. 그 덕분에 당시 청와대 사람들하고도 많이 친해졌으니까….”

그는 3김(金) 중에 김종필(JP) 전 국무총리를 가장 좋아했고 친분도 많았다고 말했다. 그의 방 앞 복도에는 그가 출연했던 작품의 장면을 담은 동판(‘만추’·1966년)과 영화 장면, 소장했던 그림 등이 전시돼 있었다. 그중 하나가 JP가 직접 써서 줬다는 ‘사유무애(思惟無涯·작은 사진)’란 한자 액자다.

“무슨 뜻인가요?”

“하하하, 정확하게는 몰라요. ‘생각에는 끝이 없다’는 뭐 그런 뜻 같은데 원래 있던 고사성어는 아니고 JP가 만든 것 같아. 3김 중에서도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나눈 사람이 JP지요.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을지로 입구에 개성상회라는 이북식으로 개고기 백숙을 하는 집이 있었는데 그 집 주인하고 나하고 일주일에 한 번은 만나 개고기를 먹었지요.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많이 만나진 못했고요.”

처음 인터뷰 요청 때 그는 건강 때문인 듯 “길게는 못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1시간 정도면 끝날 거라 생각했는데 실제론 거의 3시간가량이나 이어졌다.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 촬영을 위해 병원 뒤뜰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생각보다 한참 만에 그가 와인 빛이 감도는 빨간 스웨터에 스카프, 곱게 빚은 은발 머리 차림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짚고 있는 지팡이가 아주 좋은 것이라며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웃었다.

함께 벤치에 앉은 김에 또 몇 마디 물었다.

“선생님, 최근 열린 부산국제영화제 레드카펫에서 청바지를 입으셨던데 청바지를 좋아하십니까?”

“아∼, 내가 청바지를 좋아라 하지요. 그게 ‘돌체앤가바나’요. 150만 원짜리.” (150만 원요?) “응, 근데 윗옷이 길어서 상표가 안 보였어. 하하하.”

유머로 인터뷰를 마무리한 그는 “잘 가라”며 우리를 보고 오랫동안 손을 흔들어 주었다. 선생님, 편히 쉬십시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신성일#부산국제영화제#맨발의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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