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즈위슬랏의 한국 블로그]자연으로 회귀… 오! 내 사랑 찜질방이여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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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코 즈위슬랏 호주 출신 법무법인 충정 이사
재코 즈위슬랏 호주 출신 법무법인 충정 이사
나는 최소한 한 달에 한 번은 찜질방에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우리 동네에 럭셔리하진 않지만 괜찮은 곳이 있다. 목욕 가운 대여비를 포함해 7000원을 내고 혼자 간다. 항상 옷을 벗은 후에 몸무게를 재보곤 한다. 그 다음에 샤워를 한다. 한국 사람들처럼 목욕탕에 들어가기 전에 꼭 샤워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1996년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미국인 친구에게서 “우리 목욕탕에 가자”는 말을 들었다. 콜! 난 어렸을 때부터 탕에 몸을 담그기를 좋아하고 사우나에 들어가 찜질하는 것도 즐겨왔다. 그런데 친구의 다음 말에 약간 놀랐다. 벌거벗은 채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처음엔 좀 거부감이 들었고 부끄러움을 느꼈다. 가족이나 의사선생님 앞에서, 혹은 스포츠를 한 후에 학교 친구들 앞에서만 옷을 벗어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재빨리 익숙해졌다. 이젠 개의치도 않는다. 더러 한국 남자들이 호기심에 빠져 백인인 나를 쳐다봐도 아무렇지도 않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인인 아내는 목욕탕이나 찜질방을 싫어한다. 아내는 뜨거운 것을 못 견딘다. 결혼한 지 19년 됐는데 찜질방에 2번밖에 같이 가 본 적이 없다. 오히려 외국인 친구들에게 찜질방 동반은 꽤나 인기가 있다. 찜질방에 갈 때 내 나름의 의식 절차가 있다. 항상 온탕으로 시작하고 한 10분 뒤 열탕에 발을 담근다. 참을 수 있을 것 같으면 물에 잠수한다. 안 그러면 사우나에 들어간다. 건식 사우나는 오래 참지 못한다. 하도 더워서. 다음 코스는 습식 사우나다. 그 안에 수증기가 너무 빽빽하게 차 있어 쉽게 답답해지는데 역시 여기서도 참아야 한다.

사우나에서 나오면 바로 앞에 물줄기가 센 샤워기가 있다. 줄만 당기면 차가운 폭포가 머리 위에 쏟아질 텐데 항상 망설인다. 두려움 때문이랄까? 찬물에 예민해서 맞으면 나도 모르게 작은 비명을 지른다. 그 다음은 같은 코스를 처음부터 반복한다. 한두 번 반복하고 나면 공용 시설 층에 갈 때가 된다. 공용 시설에는 할 게 너무 많아서 놀이터인 듯싶다(사실은 그 안에 어린이용 놀이터가 있기도 하다). 따뜻한 방 몇 개와 얼음방, 식당, 벌통형 사우나 시설, 마사지실, 마사지 의자, 인터넷에 연결된 컴퓨터, 흡연실, 모두가 가운데 텔레비전을 보거나 잠자는 커다란 공간 등이 있다.

한국에 사는 동안 여러 찜질방을 찾아봤다. 갈 때마다 일상과 스트레스를 잊을 수 있다. 온천에도 가봤다. 옛 연수원 직장에서 매달 한 번 온양 온천에 동료들, 연수생들과 다 같이 가곤 했다. 실내 시설도 좋긴 했지만, 특별한 것은 밖에 나가서 실외에서 나체로 걷고, 눕고,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는 것이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하늘 아래 자연 상태에서 활동하는 것이 신기했다.

2006년에 금강산에 갔을 때도 사촌동생, 친구 둘이랑 온천에 가봤다. 거기서도 옷을 벗고 건물에서 나와서 나체로 돌아다닐 수 있었다. 사소한 일이었지만 내가 왠지 뭔가 북한 체제 전복적인 행위를 하는 듯 느껴졌다.

역사적으로 보면 한국에 목욕탕이 많이 있었던 이유가 있다. 도시화와 현대화 과정에 많은 집은 수도가 없거나 보일러가 없거나 욕조가 없었다. 집에서는 간단한 세수나 샤워를 할 수 있었지만 긴 머리를 감는 것과 욕조에 몸을 담그는 것이 불가능했다. 예를 들면 1996년 친구가 살던 신촌의 집에서 한 번 묵었을 때 다음 날 아침에 찬물이 나오는 바람에 한겨울에도 냉샤워 또는 ‘노 샤워’, 둘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었다. 그래서 목욕탕은 사치가 아니고 어느 정도 필수 공간이었다. 도시 동네마다 목욕탕의 굴뚝이 적어도 하나가 보였다.

2000년 초쯤부터 목욕탕에 큰 변화가 생겼다. 다른 모습(즉 찜질방)으로 바뀌었거나 아니면 아예 문을 닫았고 동네에서 사라졌다. 어떤 면으로 보면 슬픈 일이었지만 한국 아파트에서 사람들이 편리하게 목욕할 수 있어서 더 이상 필요 없다는 증거로 볼 수도 있다. 다행히도 더 럭셔리한 찜질방이 아직 충분히 남아있어서 내가 목욕 경험을 즐기고 싶을 때는 그곳에서 즐길 수 있다. 앞으로 찜질방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가 기대된다. 유럽에는 남녀 구분 없는 공동 사우나장이 있는데, 한국 남성들이 꼭 가보고 싶다고 하니 그 점을 벤치마킹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재코 즈위슬랏 호주 출신 법무법인 충정 이사
#찜질방#사우나#목욕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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