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석의 일상에서 철학하기]<38>약이 되는 사과, 독이 되는 사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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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 철학자
김용석 철학자
함께 어울려 사는 데에는 불화가 있기 마련입니다. 문제는 불화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입니다. 그 가운데서 아주 미묘한 것이 있는데, 바로 ‘사과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잘못한 사람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것처럼 보입니다. 이는 사적으로나 공적으로나 흔히 있는 일입니다. 식구끼리 또는 이웃 사이에서도 곧잘 상대방에게 사과를 요구합니다. 요즘 정치인들은 걸핏하면 사과를 요구하는 것 같습니다. 야당은 여당에, 여당은 야당에 그렇게 하지요.

우선 사사로운 개인들 사이에서 사과를 요구하는 건 슬기롭지 못한 것 같습니다. 사과의 과정은 사과하는 사람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사과를 받기 위해서는 ‘주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사과하려면 무엇보다도 잘못을 인정하고 ‘잘못을 뉘우쳐야’ 합니다. 그러려면 자기반성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물론 이런 과정을 신속히 거쳐 잘못한 사람이 먼저 사과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불화를 해결하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그런 사과는 사과하는 사람에게는 도덕적 치유의 약이 되고, 사과 받는 사람에게는 만족감을 줘서 삶의 보약이 됩니다.

그러나 상대방의 잘못에 대한 확신으로 우리는 성급히 사과를 요구합니다. 그 결과 오히려 불화를 키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과를 요구하고 사과를 받아내면 문제가 해결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요구해서 받아낸 사과는 다음과 같은 문제를 유발하기 때문입니다.

우선 상대가 충분한 자기반성의 시간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익지 않은 사과’가 됩니다. 그래서 독이 되는 사과가 될 수 있습니다. ‘요구한 사과’는 마치 과일이 익기 전에 따 먹는 것과 같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도 있습니다. 사과를 요구받고 마지못해 사과한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복수심을 키울 가능성이 높습니다. 복수심은 인간에게 기꺼이 주어지는 것이라서 미미한 자극에도 발동할 수 있지요.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처세 전략으로도 좋지 않습니다. 상대방이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아주 난감해지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의 잘못에 대한 확신이 있으면 잘못을 구체적으로 지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되도록 기다립니다. 더 좋은 건 잊고 지내는 겁니다. 그래서 상대방이 스스로 사과하면 아주 좋고요, 사과하지 않으면 불화가 해소되지는 않더라도 더 커지지 않아 인간관계는 유지됩니다. 사과를 요구하지 않은 것에 오히려 상대가 감동받을 수도 있어서 진정으로 사과하기도 합니다. 이는 약이 되는 사과지요.

공적인 영역에서는 어떨까요. 공인들의 잘못에 대해 사과의 요구가 필요한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에 앞서 공인의 부정한 행동에 관한 것이라면 도덕적 비판을 철저히 해야 합니다. 정책에 관한 것이라면 분명한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이를 철저히 하면 사실 사과의 요구는 필요 없어지게 됩니다. 사과는 절로 따라오게 되니까요.

정치인들이 사과 요구를 남발하면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사과의 말 한마디로 비판에 대한 공적 해명을 피해 갈 수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그럴듯한 사과로 책임질 일을 대체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공적 영역에서도 사과의 요구는 독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쩌면 정치인들은 정략적으로 사과를 요구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서로 사과를 주고받음으로써 비판받고 책임질 일들을 은폐하거나 미결의 상태로 두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요. 성숙한 시민들이 바라는 건 요식행위 같은 사과가 아니라 부정부패 없고 책임지는 정치입니다.

김용석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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