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호의 과학 에세이]유전자 정보보다 더 중요한 건 RNA 편집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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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김재호 과학평론가
김재호 과학평론가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사망한 사람의 수가 역대 최대였다고 한다. 1983년 통계를 작성한 이래 사망자 수는 28만827명으로 제일 많았다. 통계청이 9월 22일 발표한 ‘2016년 사망원인통계’에 따르면 사망 원인은 암, 심장 질환, 뇌혈관 질환, 폐렴, 자살 등의 순이었다. 암 중에선 폐암이 가장 많은 사망자를 냈다. 고령화와 식습관, 환경변화 등 여러 요소가 죽음에 관여했다.

최근 ‘사이언스 시그널링’은 RNA 편집으로 폐암의 전이 가능성을 낮추는 연구를 소개했다. 암이란 원래 정상 세포였던 것이 증식을 멈추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동안 암 연구 대부분에서는 RNA 편집 패턴들이 조절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번 연구에서 RNA 편집의 특정 효소(ADAR)가 폐샘암 진행의 촉진자 역할을 한다는 걸 알아냈다. RNA 편집 효소인 ADAR는 이중나선 RNA를 묶거나 분자의 아미노 그룹을 제거하여 아데노신을 이노신으로 바꾼다.

연구진은 폐샘암 1기 환자 802명의 샘플을 채취했다. 폐샘암은 폐암 중 약 3분의 1을 차지한다. 체액 분비의 역할을 하는 세포에서 암세포가 발생해 ‘샘암(腺癌)’이라고 불린다. 연구 결과, RNA 편집에 관여하는 ADAR가 암세포의 이주를 촉진시키는 것으로 파악됐다. 암세포 덩어리 중 일부가 떨어져 나와 다른 곳으로 전이되는 현상을 추적한 것이다. 이로써 암세포의 분화, 이동 및 침입을 억제할 수 있는 방법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

더 많은 임상실험이 필요하겠지만 약물치료를 통해 세포의 이동 경로를 억제하면 잠재적인 치료가 가능할 수 있다. 한마디로 폐암의 진행을 더디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연구진은 증가된 ADAR의 발현이 구체적으로 어떤 후속 효과를 나타내는지는 아직 불명확하다고 밝혔다.

우리 몸의 세포는 약 10조∼60조 개이고, 세포 하나에 91cm가량의 DNA가 세포 핵 내에 있다. DNA를 엄청난 정보의 양을 가지고 있는 도서관이라고 간주하면 유전자는 도서관 안에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유전자는 단백질을 만드는 방법이 저장된 정보이다. 사람 DNA는 보통 2만5000개에서 4만 개 정도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 단백질을 어떻게 만들어내느냐에 따라 신체의 모양과 기능 등이 달라진다. 여기서 중간 역할을 하는 게 RNA다. 유전자를 이용해 우리 몸의 구성물인 단백질을 만든다. 첫 단계는 DNA가 복사, 편집해 RNA를 만드는 것이다. DNA 자신은 핵에서 나갈 수 없기 때문에 대타 RNA를 내세운다. 복사된 RNA는 핵 바깥으로 나가기 전 편집이 일어난다. RNA 편집은 RNA의 무의미한 부분(인트론)이 제거되고 유의미한 부분(엑손)끼리 연결되는 과정이다.

역설적이지만 세포는 끊임없이 분열하고 증식해야 생명이 유지될 수 있다. 세포가 주변으로 움직이거나, 세포에서 세포 혹은 세포와 주변과 접착이 적절히 작동해야 한다. 하지만 너무 과하거나 유전자에 이상이 생기면 몸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다. 조로증, 혈우병, 색맹, 다운증후군 등 다수의 질병이 유전자 이상으로 발생한다. 그동안 RNA 편집 기술은 정신병이나 뇌전증, 희귀 근육병 등의 치료를 위해 연구돼 왔다. 이번 연구 결과로 암세포 전이에까지 적용될 수 있다면 암환자들에겐 분명 희소식이다.

그런데 유전자 가위를 이용한 유전체 편집은 RNA 편집과는 차원이 다르다. DNA 역시 특정 염기서열을 인지해 자르는 데 효소를 이용하긴 하지만 그 후 다시 붙이고 삽입하는 과정이 따라온다. 최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한 RNA 편집 기술도 개발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RNA 편집은 원래 몸 안에서 일어나는 자연적 과정이다. 특히 RNA는 DNA에서 전달받은 유전자 정보를 그대로 받아들여 단백질을 만들지 않고 때론 변형하기도 한다. 일정 정도 변화를 기대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정보는 정보 자체만으론 소용이 없으며 연결되고 변형되어야 의미가 있다. DNA의 유전자 정보를 복사, 편집해 우리 몸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단백질을 만드는 게 RNA이다. 이 RNA가 어떻게 편집되고 무엇에 의해 정보를 전달하느냐에 따라 종양이 진행되거나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어쩌면 DNA에 박힌 유전자 정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정보들이 편집되고 활용되는 게 더욱 중요한지 모른다. 도서관에 있는 수많은 책과 책 속에 담긴 정보들이 그 자체만으론 의미가 없듯이 말이다.

김재호 과학평론가
#사이언스 시그널링#rna#폐샘암#dna#유전자 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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