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영의 부모마음 아이마음]<43>스트레스가 되는 부모의 키 타령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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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이에게 하면 안될 말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초등학교 5학년 남자아이가 자기는 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했다. “키가 작아서?”라고 물었더니 “키가 작은 것도 있지만 엄마가 항상 키 타령을 하는 게 더 스트레스예요”라고 대답했다. 엄마는 길을 가다가도 “어머, 쟤 키 큰 거 봐라”,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다가도 “우리 아들, 뭘 먹어야 키가 클까?”,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우리 아들 얼마나 컸나? 좀 재볼까?” 한단다. 아이는 엄마 말 중에 ‘키’ 아니 ‘ㅋ’만 나와도 기분이 나빠진다고 했다.

키가 중요하고, 자라야 할 시기에 커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지나치게 강조하면 아이에게 오히려 부정적인 ‘신체 자아상’이 생길 수 있다. 자아상은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중에서 신체 자아상은 신체를 통해서 자신이 어떻다고 느끼는 것이다. 운동하면 키 큰다, 이거 먹으면 키 큰다, 잘 자야 키 큰다 등등 매사 ‘키’를 강조하면 아이는 ‘키가 크지 않으면 나는 쓸모없는 인간이 되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아이들은 역설적인 생각을 잘 한다. “키가 커야 여자들이 좋아하지”라고 말하면, ‘그럼, 내 키가 작으면 여자들이 나를 싫어하나?’라고 생각한다. “너 키 커야 형아 반 가지?”라고 유치원 다니는 아이에게 말하면 ‘그럼, 키 안 크면 형아 반 못 가나?’라고 생각한다. 특히 똑같은 이야기를 너무 반복해서 하면,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아이는 부모가 말하는 것을 반대로 뒤집어서 확대 해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키뿐 아니라 외모나 체중 등도 부모가 지나치게 중요시하면 아이는 자신의 어떤 가치보다 그것을 가장 높은 위치에 놓는다. 키, 외모, 체중 등을 자신의 가치를 결정해주는 잣대로 생각해버리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아이를 표현하는 아주 작은 일부일 뿐이다. 그것이 아이의 전부인 것처럼 중요하게 말하는 것은 절대 삼가야 한다.

아이의 키는 부모가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주어야 할 부분이 아니라, 아이가 그것으로 스트레스를 받을 때 부모가 도와주어야 할 부분이다. 어린아이들은 간혹 체격이 큰 아이가 작은 아이를 무시하기도 한다. 큰 몸으로 부딪치면 작은 아이는 당할 재간이 없다. 자신이 키가 작아 몸으로 밀리는 것은 남자아이 입장에서는 굉장히 큰 스트레스다. 그런데 엄마는 그렇게 당하고 온 아이한테 “거봐! 잘 좀 먹으랬잖아. 키도 조그맣고 몸도 말랐으니까 이렇게 당하잖아”라고 한다. 사실 체격과 상관없이 힘으로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것은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다. 작고 약한 것이 잘못은 아니다. 상대와의 관계에서 힘의 균형을 유지하는 요소는 너무나 많다. 폭넓은 지식도 있고 설득력 있는 언변도 있다. 그런데 부모가 이런 식으로 말하면 아이는 자칫 힘과 키, 체격이 모든 것의 가장 우선이 되는, 모든 문제 해결의 지름길인 것처럼 생각할 수 있다.

나는 이런 아이들에게 말해준다. “힘으로만 모든 것이 해결되는 세상이라면, 조직폭력배 두목이 대통령을 해야 맞지 않겠니? 그런데 그렇지 않잖아. 대부분의 사회 리더가 되는 사람들은 힘을 쓰는 사람이 아니야. 주먹도 힘이지만 또 다른 힘이 있는 거야.”

그러면서 “힘이나 체격에서 밀린다고 너 자신을 약한 사람이고 생각하지 마”라고 일러준다. 그리고 말로 대항하는 법도 알려주고, 체격이 모든 것에 우세한 것은 아니나 운동 같은 것을 꾸준히 해서 피하거나 방어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도 필요하다고 알려준다. 이미 작은 키에 지나치게 스트레스를 받는 아이에게는 “네가 만약 직업으로 모델을 할 거라면, 좀 많이 커져야겠지. 또 씨름 선수나 킥복싱 선수가 될 거라면 체격도 좀 더 커져야겠지.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키나 체격, 힘은 별로 중요하지 않아”라고 말해 부정적인 신체 자아상이 생기지 않도록 한다.

키가 자라거나 많이 먹는 것은 아이가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아이가 조절하고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한글을 배우는 것은 아이가 노력하면 결과가 더 나아질 수 있다. 하지만 키는 그렇지 않다. 아이가 할 수 없는 것을 자꾸 아이가 노력하지 않은 탓이라고 말하는 것은 잔인한 것이다. 아이도 크고 싶다. 그래서 더 스트레스를 받고 힘들다. 그 마음을 좀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키가 작은 아이#아이들은 역설적인 생각을 잘 한다#부정적인 신체 자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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