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기의 음악상담실]상처를 기억하는 법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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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장필순의 ‘맴맴’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한밤중에 잠이 깼습니다. 너무 더워요. 오전 3시입니다. 다시 잠들려 해도 도저히 잘 수가 없습니다. 매미들 때문에요. 이놈들은 언제부터 밤낮을 구분하지 못하게 되었을까요?

어떤 이유에서건 어둠 속에서 울어 젖히는 수컷 매미들은 헛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땅속에서 10년의 긴 시간을 인내해서 딱 한 번 짝짓기를 하는 암컷들은 최대한 신중한 결정을 해야 하기에, 청각은 물론이고 시각도 동원해서 짝을 결정할 것이니까요.

잠을 포기하고 혼자 거실로 나와 궁상맞게 책을 펼치는데, 머릿속에서 문득 장필순의 ‘맴맴’이 ‘재생’됩니다. 필순이가, 아니, 예민 덩어리 이규호(이 곡의 작사 작곡자)가 읊조립니다. 졸다가 매미 소리를 들으니 꿈속에서 몇 년 전 너로 인한 상실의 고통이 ‘재생’된다고. 꿈속에서라도 너를 잡으려고 발버둥치는데 헛손질만 하게 된다고. ‘맴맴’은 의성어가 아니라,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내 모습의 의태어라고.

편곡을 한 ‘어떤날’의 조동익 형도 귀에 거슬리는 불협화음의 효과음으로 아직도 아물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불쑥 튀어나오는 상처의 아픔을 암시합니다. 그러다 노래의 마지막에 그 효과음을 슬쩍 화음 속에 끼워 넣어 주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그러니 걱정하지 말라는, 수긍의 노력을 보여주는 것이죠. 노래 하나 안에 상실의 과정(부정, 분노, 흥정, 우울, 수긍)을 우겨넣은 짧고 순진한 레퀴엠입니다.

안정적인 마음 상태를 위해선 자신의 삶의 기억과 의미의 정확한 인식, ‘시간의 통합’이 필요합니다. 먼저 과거에 살지 말아야 합니다. 매미 소리 하나만으로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약한 ‘플래시백’이죠. 플래시백이란 트라우마를 심어준 과거의 사건이 현재 다시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느끼는 현상입니다. 과거의 고통을 현재에서 다시 고스란히 경험하는 것이죠.

플래시백을 없애려면 그것이 과거의 사건의 기억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플래시백을 겪는 사람들은 사건의 기억을 현재형으로 말합니다. “그 사람이 나를 때려요!” “나를 죽이려고 해요!” 하지만 그 사건은 과거입니다. 끝났습니다. 스스로 그것이 기억이라고 납득할 수 없다면 주변 사람들에게 그것이 현실이 아님을 확인시켜 달라고 부탁해야 합니다.

다음은 불편한 현실을 부정하고 외면하지 말아야 합니다. 용기가 필요하죠. 그리고 그 불편함을 해소하거나 수긍할 지혜가 필요합니다. 희망사항은 현실이 아닙니다. 쉽지 않죠. 결국 현실의 구원은 내가 아니라 나를 둘러싼 사람들입니다.

그 다음은 불확실한 미래입니다. 진심으로 삶의 불확실성을,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지만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한계 내에서 우리가 무엇을 살리고 무엇을 버릴지 우선순위를 결정하고, 멈출 수 없는 시간 속에서의 우리의 삶을 설계하고 확인할 수 있죠.

과거를 과거이게 해주고, 현실에 적응하고, 피할 수 없는 미래의 한계를 수긍해야, 한밤중에 부질없이 울며 목적은 달성하지 못하고 남들 잠이나 깨우는, ‘매미 짓’을 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장필순#맴맴#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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