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기의 음악상담실]뒤끝이 없다는 그 거짓말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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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윤종신 ‘좋니?’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지질한 남자 이야기 전문가 윤종신이 더 극단적으로 지질한 노래를 발표했더군요. 지질한 태도는 어떤 결과나 현상을 인정하거나 승복하지 못하고 자꾸 토를 달거나 변명을 하며 귀찮게 하는 것쯤으로 정의될 수 있겠죠?

여자와 헤어졌는데 그녀가 잘 지낸다는 소식이 자꾸 들려옵니다. 남자는 억울해서 그녀가 자신의 10분의 1만이라도, 아니, 좀 더 많이 힘들었으면 좋겠다고 노래하죠. 다행인 것은 자신이 뒤끝이 있는 사람이란 것을, 그저 그런 사람이란 것을 직시하며 노래를 마친다는 것입니다. 부족한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능력은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 중의 하나죠.

반면, 자신을 뒤끝이 없는 사람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뒤끝이 없다’는 말은 성격이 과격하거나, 타인을 존중하지 않거나, 쌓인 분노가 많아서 잘 참지 못하는 사람들이 감정을 폭발시킨 후에 사태를 수습하려고 말했던 변명에서 유래합니다. 인간은 같은 말을 자꾸 반복하다 보면 그 말을 정말 믿게 되곤 합니다. 물론 자신만 그렇게 믿고, 다른 사람들은 안 믿죠. 뒤끝이 없다는 사람들은 이런 경우를 반복해서 겪게 됩니다.

1. 불만을 조금 참아보려다 쉽게 폭발합니다. 하고 싶은 말을 직설적으로 다 하는 것이죠. 그 언어폭탄의 파편들을 뒤집어쓰는 사람은 뒤끝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보다 약자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2. 얼마 후 이성을 되찾은 뒤끝 없는 ‘앞끝’ 씨는 걱정을 하기 시작합니다. 상대가 자신을 싫어할까 봐, 혹은 자신의 ‘앞끝’ 때문에 나중에 불이익을 당할까 봐.

3. 결국 앞끝 씨는 아직 자신으로 인한 상처의 흔적이 역력한 상대에게 사과를 합니다. “미안해∼ 너무 기분 나빠 하지 마∼! 나 뒤끝 없는 거 알잖아! 알지?” 변명이자 강요죠.

4. 이렇게 되면 상대는 매우 난처해집니다. 기분을 풀어주지 않으면 속 좁고 뒤끝이 있는 사람이 되니까요. 그리고 자신보다 강한 앞끝 씨의 기분을 상하게 하면 위험하니까요. 그래서 결국 “그래∼ 알지…. 나도 뒤끝 없는 사람이잖아∼?”라며 겸연쩍게 웃습니다. 자기방어죠.

5. 그러나 사건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앞끝 씨는 상대의 이해 혹은 용서를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상대에게 과도한 친절을 베풉니다. 그런 상황은 앞끝 씨를 화나게 만들죠. 결국 얼마 안 있어 앞끝 씨는 다시 폭발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고는 다시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뒤끝이 없다”는 대사를 반복하게 될 것입니다.

뒤끝이 없다는 화해의 제스처는, 실컷 두들겨 패고는 너를 미워하지 않으니 너도 나를 미워하지 말라는 강요입니다. 뒤끝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니 이제 뒤끝이 없다는 변명은 그만합시다. 그보다는 앞끝을 만들지 않는 노력을 해야 하겠죠.

기질적으로 충동 조절의 문제가 있다면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갈등이나 분노 같은 해결되지 못한 것들이 가슴에 가득해서 양은냄비처럼 쉽게 달아오른다면, 그 안을 비우고 정리해서 뚝배기로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뒤끝을 운운하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는 사랑과 인정을 받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입니다. 그 두려움을 만만한 대상에게 푸는 것이죠. 혼자 노력해도 잘 안 된다면 이제 약한 사람들을 그만 괴롭히고 성직자나 전문가의 도움을 받도록 합시다.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윤종신#좋니?#뒤끝#충동 조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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