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균 칼럼]중국, 우방 키워야 大國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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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도시 둔황 엄청난 건물群… 시진핑 一帶一路 천문학 투자
해외 첨단기술 노하우 中國化… ‘다국적 기업 무덤’된 중국
전쟁능력·인구·우방 문제 등… ‘美 도전 멀었다’ 이구동성
국내 ‘中 대체론’ 공허하고 위험

박제균 논설실장
박제균 논설실장
대륙의 스케일은 달랐다. 예부터 실크로드의 관문이었던 중국 서쪽의 변경도시 둔황(敦煌). 이 사막의 오아시스 도시 근교에는 서울의 세종문화회관만 한 공연장과 컨벤션센터, 전시장, 아파트 등이 속속 들어서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도대체 이 변방 사막도시에 저 건물들을 채울 만한 사람이 몰려들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런민일보가 지난달 하순 개최한 ‘2017 일대일로(一帶一路) 미디어 협력 포럼’에는 세계 120여 개국에서 언론인 300여 명이 참석했다. 일대일로의 일대(One Belt)는 중국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뻗는 육상 실크로드를, 일로(One Road)는 동남아를 경유해 아프리카와 유럽으로 이어지는 해양 실크로드를 뜻한다. 시진핑 주석이 2013년 주창한 일대일로는 중국의 균형발전 전략인 동시에 세계로 뻗어나가기 위한 확장 전략이다.

시 주석의 숙원사업이자 국가 목표인 일대일로에 중국 당국은 천문학적인 돈과 인력을 쏟아붓고 있다. 그 거점도시의 하나인 둔황에서 열린 이번 포럼은 행사 규모와 프로그램 등 외형(外形)은 분명 대국다웠다. 그러나 자발적 참여를 저해하는 관(官) 주도의 진행 방식은 갑자기 커진 몸집을 못 따라가는 내실(內實)을 드러내는 듯했다.

오랜만에 베이징과 상하이 같은 중국 대도시를 방문한 사람은 빽빽이 들어선 놀라운 사이즈와 참신한 디자인의 고층건물에 놀란다. 그러나 빌딩 내부의 화장실 등 구석구석의 마감은 아직 어설프다. 하드웨어로는 미국과 어깨를 견주는 G2지만 소프트웨어는 따라가지 못하는 중국의 현실을 보는 듯하다.

그렇다고 중국이 아직 멀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한국 사람들이 중국의 열악한 환경에 일종의 자부심(?)을 느끼며 달러 자랑을 하던 때가 불과 20년도 안 됐다. 지금 중국에선 똑똑하고 음식 잘한다는 한국 여성, 심지어 백인 원어민 여성을 가정부로 쓰는 부자들도 늘고 있다. 과거 많은 이민족을 동화시켰듯, 중국에 진출한 해외 기업의 첨단기술과 노하우를 중국화(中國化)하는 방식으로 중국 시장은 이미 숱한 다국적기업의 무덤이 되고 있다. 한국에선 규제 때문에 설 자리를 못 찾은 우버도 이미 편리한 중국판 우버로 대체됐다.

그럼에도 중국에서 만난 많은 언론인과 기업 관계자, 심지어 중국인들 자신도 중국이 미국에 도전할 날은 아직 멀었다고 입을 모았다. 2016년 중국의 국방예산은 1928억 달러로 미국(6171억 달러)의 3분의 1 수준이다. 그동안 축적해온 국방력을 감안할 때 중국의 전쟁수행능력은 미국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친다는 것이 군사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하지만 이런 완력보다 심각한 것이 인구 문제다. 미국은 인구가 꾸준히 증가하는 반면 중국의 생산가능인구는 한국보다도 2년 앞선 2015년부터 감소세로 접어들었다. 같은 해 기준 중국의 독신자는 2억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중국도 한국처럼 아이를 낳지 않을뿐더러 결혼 자체가 어려워지는 상황을 맞고 있다. 최근 중국 젊은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최고 신랑감의 조건으로 ‘본인 능력’보다 ‘부모 재산’을 꼽았다. 돈이 없어 결혼 못 하는 처지는 한국 청년만의 문제가 아니다.

중국의 또 다른 치명적 약점은 우방(友邦)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중국의 국경선은 2만2457km로 지구 둘레의 반을 넘는다. 기나긴 국경선에 14개국과 맞대고 있지만, 거의 모든 나라와 국경 분쟁을 비롯해 크고 작은 갈등을 겪고 있다. 한국에도 비이성적이고 무차별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으로 친구를 잃어가고 있다. 반면 미국은 인접한 캐나다와 멕시코는 물론 영국과 한국 일본 등 유럽과 아시아에 수많은 우방을 키워왔다. 만에 하나 미국과 중국이 격돌하는 상황이 온다면 세계가 어느 편을 들지는 안 봐도 훤하다.

따라서 우리 사회 일각에서 나오는 ‘중국의 미국 대체론’은 공허하다 못해 위험하다. 반미(反美) 정서에 휩싸여 국제정세 판단을 그르친다면 나라가 위태로워진다. 중국이 한국을 의식하는 것도 다분히 한미동맹 때문이고 한국과 미국이 멀어진다면 중국이 보는 한국의 전략적 가치는 크게 떨어진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귀국하는 날, 공항으로 가는 차에 한국에서 근무하는 중국의 젊은 여성 외교관과 동승했다. 그는 “한국과 중국은 기나긴 역사적 문화적 공감대를 갖고 있다. 지금의 한중 갈등은 그 장구한 시간에 비하면 찰나에 불과하다. 두 나라가 머지않아 갈등을 극복하고 함께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중국의 물리적 보복보다 이런 젊은이들이 훨씬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
#2017 일대일로 미디어 협력 포럼#중국의 미국 대체론#중국 반미 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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