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181〉빵집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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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집 ― 이면우(1951∼ )

빵집은 쉽게 빵과 집으로 나뉠 수 있다
큰길가 유리창에 두 뼘 도화지 붙고 거기 초록 크레파스로
아저씨 아줌마 형 누나님
우리 집 빵 사 가세요
아빠 엄마 웃게요, 라고 쓰여진 걸
붉은 신호등에 멈춰 선 버스 속에서 읽었다 그래서
그 빵집에 달콤하고 부드러운 빵과
집 걱정 하는 아이가 함께 살고 있다는 걸 알았다
나는 자세를 반듯이 고쳐 앉았다
못 만나 봤지만, 삐뚤빼뚤하지만
마음으로 꾹꾹 눌러쓴 아이를 떠올리며


시인의 직업은 다양하다. 교사나 교수 시인은 퍽 많은 편이고, 신문사나 출판사에서 일하는 시인도 더러 있다. 학생 시인이나 주부 시인이 있는가 하면 농부 시인이나 제지공 시인도 있다.

그중에서 이면우 시인은 보일러공 시인이다. 상당히 드문 이력이다. 펜과 종이에 가까운 사람들이 시를 쓰는 경우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보일러를 고치는 시인이라니 심히 멋지지 않은가. 낡은 공구 상자에 응당 들어 있어야 할 연장들이 있고, 그 옆에 시를 적기 위한 종이와 필기도구가 있다고 상상해 보자. 공구와 필기도구의 조합은 낯설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시인에게 손에 쥔 공구나 연필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 말이다. 그에게 시란 자신이 만나는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것이다.

‘빵집’도 마찬가지다. 이 시에는 손쉬운 허구도, 흔한 각색도 없다. 그 대신 경험과 일상, 솔직함과 진솔함이 매력을 더한다. 빵집의 사정을 걱정하는 아이는 사랑스럽고, 그 아이의 작은 글씨를 발견해 낸 시인의 눈은 더 사랑스럽다. 그뿐일까. 모르는 아이의 마음에도 깊이 공감하면서 자세를 고쳐 앉는 태도는 존경스럽다.

시는 하늘에서 내리는 눈과 같아서 가리는 곳 없이 세상 곳곳에 깃들어야 한다. 응달이라고 꺼리지 않고 양달이라고 피하지 않는 것이 눈처럼 고운 시의 생리다. 시인은 그런 시의 생리를 보여준다. 일상의 감동을 음미하기에 이 작품만으로는 부족하다면, 시인의 시집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를 추천한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빵집#이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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