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구의 옛글에 비추다]내 안의 용기를 깨워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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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구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조경구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병자호란 때 온양(溫陽)의 17세 된 교생(校生)이 어머니와 함께 적에게 사로잡혔다. 어머니는 늙어서 못 걸으시니 부디 놓아 달라고 교생이 애걸하였으나 오랑캐는 들어주지 않고 끌고 갔다. 교생이 살펴보니 포로는 수백 명이나 되는데 오랑캐 기병은 100여 명 사이에 겨우 하나씩 있고, 행렬이 구불구불하여 앞에 가는 자가 뒤에 오는 자에게 소리쳐도 들리지 않았다.

교생이 오랑캐를 몽둥이로 치자 오랑캐는 말에서 떨어져 죽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큰소리로 “우리나라 사람이 오랑캐를 죽였다”고 외치며 교생을 죽이려고 들었다. 교생이 “저는 늙으신 어머니를 살리려고 적을 해쳤는데 여러분은 어찌 저를 죽이려 하십니까? 저는 이제 갑니다. 여러분은 도망갈 생각이 없으십니까” 하였다. 마침 날이 저물었기에 교생은 어머니와 함께 수풀 속으로 뛰어들어 무사할 수 있었다.

용주(龍洲) 조경(趙絅·1586∼1669) 선생의 문집에 실린 ‘병자년 난리 때 온양의 어떤 교생이 어머니를 구한 이야기(丙子難溫陽有校生救母說)’입니다. 무기력하게 끌려가는 무리 속에서 홀로 용기를 내어 적을 죽이고 어머니와 함께 탈출한 17세 젊은이에게 찬사를 보냅니다. 그러나 행여 자신들에게 해가 미칠까 이를 일러바치고 그를 죽이려고까지 한 어른들의 비겁하고 어이없는 행동에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그 후 사태가 안정되고 군(郡)에서 장사(壯士)를 선발하게 되자 마을의 부로(父老)들이 교생을 추천했다. 교생이 관아에 들어가 말하였다. “당시 모자가 모두 호랑이 아가리에 걸려들어 금방이라도 죽겠기에 만 번 죽을 각오로 꾀를 내어 맨손으로 오랑캐를 죽인 것이지 털끝만큼이라도 용력(勇力)이 있어서 그랬던 게 아닙니다. 만약 이것으로 선발된다면 거짓을 무릅쓰고 요행수로 명예를 얻는 데 가깝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군수는 그 말이 옳다고 여기고 교생을 물리쳤다.

선생은 “애석하다! 군수는 다만 용력이 있는 자가 오랑캐를 공격한 것만 알았을 뿐 의열(義烈)이 내면에서 격동하여 용력이 된 것은 몰랐다(惜乎! 郡守但知有勇力者擊胡, 而不知義烈激于中而爲勇力也)”라며 당시 군수의 태도에 대해 탄식합니다. 용기를 내야 할 때 진정 용감해질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해 봅니다. 나라는 안팎으로 어려워지고 광복절은 다가오고 있습니다.

조경구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용주 조경#병자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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