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은/나승권]경찰권 없는 자치경찰제, 제대로 운영되기 힘들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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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승권 제주자치경찰단장·변호사
나승권 제주자치경찰단장·변호사
최근 경찰청은 경찰개혁위원회가 권고한 광역단위의 자치경찰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권고안은 지방자치단체가 치안서비스를 담당하는 내용으로 올 하반기 시범 실시를 거쳐 내년 전국으로 확대된다. 제주도는 2006년 10월 도지사 소속으로 제주자치경찰단을 출범시키고 이미 자치경찰제를 운영해왔다. 그동안 괄목할 만한 성장을 거뒀으나 근본적인 한계도 나타났다.

첫째, 자치경찰제는 큰 틀에서 치안은 경찰청이, 치안서비스는 자치경찰이 담당하는 제도다. 자치경찰은 범죄 예방 및 진압 업무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도로 파손, 교통시설물 고장, 교통질서 유지, 순찰 등 치안서비스를 맡는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치안과 치안서비스를 구분하기 어렵다. 단적으로 경찰도 아닌데 왜 나서느냐는 주민의 빈축에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한다.

둘째, 치안서비스는 기본 업무조차 제대로 수행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를 갖고 있다. 어떤 사고나 재해가 발생하면 경찰청 소속 지구대, 소방서가 출동하고 심지어 동사무소 직원들도 달려간다. 그러나 자치경찰은 사고가 발생했다는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해 출동은 엄두를 낼 수가 없다. 지구대 같은 하부조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정 효율성을 고려할 때 치안서비스만 담당하려고 지구대 등 상시근무 조직을 만들 수 없는 형편이다.

셋째, 자치경찰제는 실질적 지방분권 취지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지방자치의 완성도를 높이고 중앙경찰과 자치경찰의 건설적인 경쟁을 유도한다는 게 권고안의 취지다. 권고안은 학교, 가정, 성폭력의 수사권을 자치경찰에 부여해 실질적 경찰권을 갖게 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런 지엽적인 분야의 수사권은 자치경찰권 강화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한다. 제주자치경찰에 제주지방경찰청 권한이 배분됐다거나 두 기관이 경쟁관계에 있다고 보는 사람은 없다.

넷째, 인력과 예산에 대한 국가적 지원이 현저히 부족하다. 현재 제주자치경찰이 맡은 업무 대부분은 중앙경찰과의 공동사무다. 그러나 정부의 지원은 당초 이관된 인력에 대한 인건비 및 운영비 일부를 빼면 거의 없다. 권고안도 이관된 인력 이외에 더 이상 국가적 지원은 없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번 권고안은 현실적인 검토가 크게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더 깊이 있고 다양한 관점에서 성공적인 자치경찰제를 추진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최근 국가보안 등 광역수사 기능만 중앙경찰이 맡고 나머지는 모두 자치경찰이 맡는 전면적 자치경찰제 등에 대한 논의도 진행되고 있다. 제주자치경찰단처럼 별다른 경찰권을 부여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대민 행정업무만 자치경찰에 대폭 이관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나승권 제주자치경찰단장·변호사
#경찰청#자치경찰제#치안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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