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은/서정욱]삼성 합병 놓고 민사-형사 엇갈린 판결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21일 03시 00분


코멘트
서정욱 변호사 전 영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서정욱 변호사 전 영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대한 법원 판결이 엇갈려 큰 혼선을 빚고 있다. 지난달 19일 삼성합병 무효 확인소송(민사) 1심 판결에서 재판부는 “당시 국민연금을 대표하는 이사장이 합병 찬반 결정 과정에 보건복지부나 기금운용본부장의 개입을 알았다고 볼 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시했다. 또 “국민연금 투자위원회의 찬성 의결 자체가 내용 면에서 거액의 투자 손실을 감수하거나 주주 가치를 훼손하는 것과 같은 배임적 요소가 있었다고 보기 부족하다”고 했다.

그런데 서울고법 형사 재판부는 14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로 기소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연금공단에 대한 지도감독권을 남용해 복지부 공무원을 통해 홍완선 전 본부장으로 하여금 합병에 찬성하도록 유도하게 하는 등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였다”며 1심과 마찬가지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했다. 합병 과정에 문제가 없다는 민사법원의 판단과, 부당한 합병에 찬성하여 국민연금에 손해를 입혔을 가능성이 있다는 형사법원의 판단이 상반되는 것이다.

필자는 형사법원의 판단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형사재판은 민사보다 훨씬 엄격한 증거법칙과 높은 증명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1994년 6월 백인 여배우 니콜 브라운 심슨이 시체로 발견된 후 남편인 유명 프로미식축구 선수 출신의 흑인 배우 O J 심슨이 용의자로 지목되었다. 하지만 심슨은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후 피해자 유족은 심슨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해 이겼다. 형사법원의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두 판결은 완전히 모순이지만 대부분의 법률가는 두 판결의 정당성을 모두 인정했다. 이유는 바로 형사판결과 민사판결의 ‘증거법칙’과 ‘입증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형사재판은 엄격한 증거법칙이 적용되는 데 비해 민사는 상대적으로 증거법칙의 적용이 완화된다. 형사재판에서 유죄를 인정하려면 ‘합리적 의심이 없는 확신’이 들 정도의 높은 증명력을 요하지만, 민사는 ‘통상인이 일상생활에 있어 진실하다고 믿고 의심치 않는 정도의 고도의 개연성’으로 충분하다. 그런데 삼성 합병 재판은 민사재판보다 훨씬 높은 증명력을 요하는 형사재판 판결이 오히려 민사재판보다 훨씬 더 낮은 증명력으로 유죄를 인정한 것이다.

이번 형사 항소심 판결은 정교한 논증으로 내려진 판단이라고 보기 어렵다. 엄격한 증거와 사실에 입각했다기보다는 추측과 선입견, 논리 비약에 기초한 무리한 판결이 아닌지 의문이 든다. 손해액을 산정할 수 없다며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이 아니라 일반 형법상 업무상 배임죄를 적용하면서도 합병이 국민연금에 거액의 손해를 끼쳤다는 것은 그 자체가 논리 모순이 아닌가?

국민연금의 최종 손해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합병 전후의 보유지분과 시가총액을 정확하게 비교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합병 비율이 삼성물산에 불리하다는 일부 의견이 있다는 이유로 금액조차 특정할 수 없는 손해를 인정한 것은 명백한 사실 오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서정욱 변호사 전 영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삼성#삼성 합병#삼성 합병 법원 판결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