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세상/홍형진]희망의 크기 ‘월급 200만원’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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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형진 소설가
홍형진 소설가

‘다름’을 뼈저리게 체험할 때가 가끔 있다. 그럴 때면 우리가 같은 시간을 사는 게 맞는지 묻곤 한다. 지난해 말 어느 실업계 고등학교에서 행한 글쓰기 기초 특강에서도 그랬다. 직접 몇 줄 써보게 하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될 거라며 요청해왔다. 한데 가벼운 마음으로 찾은 그곳에서 나는 제대로 한 방 맞았다.

“그렇다고 현장실습을 폐지하면 여기 애들은 어쩌라는 거냐?”

그 학교의 교사가 내게 이렇게 푸념했다. 나는 무슨 말인지 즉각 이해하지 못했다. 실업계 학생의 현장실습에 어떤 조치가 취해졌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귀갓길에 검색해보고서야 추이를 파악했다. 지속적으로 논란이 된 안전사고, 임금 미지급, 초과근무 등을 뿌리 뽑기 위해 현장실습을 폐지하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놀라웠다. 교육의 한 축인 실업계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결정임에도 전혀 화제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 애초 기사 자체가 거의 없었다. 정부의 보도자료를 천편일률적으로 한 차례씩 받아 쓴 게 전부였다. 그 영향력을 심도 깊게 분석하거나 실업계 교사와 학생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기사는 아예 없었다. 관련 기사 대부분의 댓글창 역시 텅 비다시피 했다. ‘현실을 모르고 섣불리 결정했다. 학교와 학생 모두 난리다’는 실업계 재학생의 댓글은 호응을 얻지 못했다. 기자도 대중도 그들의 삶에 관심이 없었다.

지금 내가 문제시하는 건 현장실습 폐지가 아니다. 나는 교육 전문가가 아닌 데다 실업계 쪽은 더더욱 모르기에 그를 논할 소양이 없다. 내가 지적하는 건 담론이 생성되고 소비되는 양상이다. 지나치게 엘리트 중심으로 편향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 교육은 주된 화젯거리지만 그 모든 이야기는 결국 ‘명문대 입학’으로 귀결된다. 어떤 논제로 대화해도 실제 속내는 ‘그래서? 명문대에 가려면 우리 애가 뭘 준비해야 한다는 거지?’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글쓰기 수업에서 관심 있는 직업, 전공 등을 직접 조사해본 후 그 내용을 활용해 아무 글이나 써보라고 시켰다. 결과물을 받아들고서 깜짝 놀랐다. 명문고, 명문대 출신의 나와 내 친구들은 관심조차 주지 않았던 직업, 그러니까 우리 사회 먹이사슬의 아래쪽에 있는 직업이 대부분이었다. 월급 200만 원을 콕 집어 명시하며 그 정도를 희망한다고 쓴 친구도 있었다.

10여 년 전 대학 수업 때 “졸업 후 월급 얼마 받고 싶어요?”라고 교수가 물었다. 학생들의 대답을 복기해보면 400만 원이 평균이었고 500만 원은 불러야 교수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연세대 상대 소속이라면 그 정도 포부는 있어야 한다는 심산이었을 테다. 내가 속한 집단에선 그게 당연했다. 공부는 어렵고 취업도 힘들지만 결국엔 그 정도 레벨에 안착할 거라고 내심 확신했고 실제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근래의 여러 통계를 보면 우리 사회의 중위소득은 200만 원에 훨씬 가깝다. 실제로는 200만 원이 보편적인 수치이고 400만~500만 원은 하늘 높이 자리한 수치란 소리다. 결론은 확연하다. 아이들의 꿈이 작은 게 아니라 내가 상류층하고만 어울려온 것이다. 아니, 나 자신부터 상류층이다. 대기업 직장인 대신 프리랜서 작가의 길을 택했지만 중요한 건 내겐 선택지가 있었다는 점이다. 보통은 없다.

솔직히 인정하자. 담론을 생성하고 주도하는 이의 대부분이 상류층이다. 우린 이 점을 명확히 인지하고서 교육, 소득, 세금, 부동산, 복지 등을 논해야 한다. 지금은 너무 기울어져 있다. 월소득 700만 원의 맞벌이 부부를 서민인 양 서술하는 기사, 연봉 5000만 원의 누군가가 부르짖는 부자 증세 구호 등은 기만적이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홍형진 소설가
#실업계#현장실습 폐지#글쓰기 수업#상류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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