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이헌재]이치로의 은퇴, 이종범의 후회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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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재 스포츠부 기자
이헌재 스포츠부 기자
이종범 프로야구 LG 2군 총괄 및 타격코치(49)는 21일 경기 이천 LG챔피언스파크에서 훈련을 마친 후 선수들에게 “오늘 저녁에는 메이저리그 경기를 시청하라”고 조언했다. 이날 일본 도쿄돔에서는 오클랜드와 시애틀의 경기가 열렸다. ‘타격 기계’ 스즈키 이치로(46)의 은퇴 경기였다.

자기 방에서 TV로 이치로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던 그는 자기도 모르게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많은 감정이 교차했다. 무엇보다 스스로 많은 반성을 했다”고 했다.

이종범은 이치로보다 세 살 위다. 직접 실력을 겨룬 적은 3번 있다. 1995년 한일 슈퍼게임과 1998년 일본프로야구 시범경기, 2006년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다.

둘은 닮은 점이 많았다. 무엇보다 공을 잘 때렸다. 발도 빨랐고, 어깨도 강했다. 2012년 초 이종범이 현역에서 물러났을 때 일본 언론에서는 “‘한국의 이치로’가 은퇴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현역 시절 이종범은 이치로에게 단 하나를 부러워했다. 자신은 오른손 타자인데 이치로는 왼손 타자라는 것이었다. 왼손 타자는 타격과 함께 1루를 향해 달려가는 거리가 짧아 오른손 타자보다 유리하다. 우투좌타(던지는 건 오른손, 치는 건 왼쪽 타석에서 하는 것)였던 이치로는 빠른 발을 이용해 수많은 내야안타를 만들어냈다. 타고난 왼손잡이였으나 야구를 시작할 무렵 왼손잡이용 글러브가 없어 오른손으로 야구를 한 이종범으로선 억울할 만도 했다. 한을 푼 것은 아들 이정후(21·키움)를 통해서였다. 그는 오른손잡이인 이정후를 이치로처럼 우투좌타로 만들었다. 이정후의 우상 역시 이종범이 아닌 이치로다.

이치로는 이종범보다 7년이나 더 선수 생활을 했다. 시간이 갈수록 부러움은 더욱 커졌다. 이종범은 “이치로는 타고난 천재였지만 그 천재성을 지키기 위해 더 준비하고 노력했다. 결과보다 준비 과정에서 행복해했다. 진정으로 야구를 사랑한 선수였다”라고 말했다. 그는 “국적을 떠나 같은 야구인으로 존경스럽다. 나 역시 선수 시절 이치로같이 더 노력한다는 생각을 갖지 못한 게 후회된다. 우리나라 프로 선수들도 이치로의 노력과 준비를 배웠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이치로는 고국 팀 관중의 기립박수 속에서 그라운드를 떠났다. 그라운드 위 모든 선수들이 떠나는 그에게 경의를 표했다. 경기 후에 1시간 넘게 열린 은퇴 기자회견은 몇몇 TV로 생중계되기도 했다. 미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는 그를 기리기 위해 그의 등번호인 51번 게이트에서 출발했다.

그날 LG 2군 선수 가운데 몇 명이나 이치로의 경기를 지켜봤는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이치로의 아름다운 퇴장에서 뭔가를 깨달은 선수가 있다면 그만큼 노력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종범은 이렇게 말했다. “이치로는 프로 28년간 4367개의 안타를 쳤다. 그런 선수도 은퇴하는 날까지 철저하게 준비하고 안타를 못 치면 아쉬워했다. 나 같은 보통 선수들은 2, 3배 더 노력해야 하는 것 아닐까.”

이헌재 스포츠부 기자 uni@donga.com
#이종범 코치#스즈키 이치로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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