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하정민]관종 시대의 하수, 중수, 고수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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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민 디지털뉴스팀 차장
하정민 디지털뉴스팀 차장
어텐션 호어(attention whore). 지나칠 정도로 타인의 관심을 갈구하는 소위 ‘관심종자(관종)’의 영어 표현이다. 그 행동이 일종의 ‘매춘(whore)’이란 비하 의미가 담겼다. ‘주목하다(pay attention)’는 말에도 ‘돈(pay)’이 포함된다. 남의 시선을 끄는 일이 기본적으로 자극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왜 그럴까. 정보가 무한대로 늘어나고 있는 반면 인간의 정보처리 속도는 이를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베스트셀러 ‘관심의 경제학’의 저자 토머스 대븐포트 미 뱁슨칼리지 교수는 “뉴욕타임스(NYT) 일요판에 담긴 정보가 15세기에 작성된 모든 문서보다 많다. 이제 사람들의 관심을 얼마나 잘 끌어오느냐가 성공을 좌우한다”고 말한다.

가장 쉽게 주목받는 방법은 말초적 호기심 자극. 성(性) 상품화, 특정인에 대한 무차별 공격과 비난, 과장과 왜곡, 지나친 정보 공개(TMI·too much information) 등이다. 후폭풍도 따른다. 동종업계 사업가 저격 논란에 휩싸인 음식평론가, 본인의 교통사고와 아이의 엘리베이터 사고를 실시간으로 중계한 여성 탤런트에게 쏟아진 싸늘한 반응만 봐도 알 수 있다. 일종의 하수(下手)랄까.

중수(中手)는 ‘겸손한 척 자랑(humblebrag)’하거나 ‘일부러 애매모호하게 행동하는 사람(vaguebooker)’이다. “남편이 생일 선물로 샤넬 가방을 사 왔는데 원하는 디자인이 아냐. 속상해”라거나 구체적 상황 설명 없이 “힘들다…” “이제 다시는!!!”이란 말을 소셜미디어에 올려 ‘뭔 일 있어?’ 반응을 유도하는 식이다. 전자보다 더 많은 짜증을 유발한다는 공통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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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고수(高手)는? 대중을 상대하면서 일부러 ‘익명(匿名)’을 자처하는 예술가, 연예인, 정치인 등이 아닐까. 이달 초 영국 런던 소더비 경매장에 내놓은 그림에 원격조종 파쇄기를 숨겨놓은 후 산산조각 낸 영국의 익명 예술가 뱅크시를 보자.

예술계의 부조리와 황금만능주의를 고발하기 위해서라는 의도는 이해하나 이 익명 소동극이 그의 명성을 높여줬음도 부인할 수 없다. 원래도 유명한 그가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추가로 받았을 뿐 아니라 낙찰자는 엉망이 된 그 그림을 104만 파운드(약 16억 원)란 고가에 그대로 매입하겠다고 밝혔다. 어디까지가 풍자고 어디까지가 마케팅인지 아리송하다.

‘나폴리 4부작’으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얼굴 없는 소설가 엘레나 페란테. 이 작품은 세계적으로 1000만 부 판매량을 기록했지만 아무도 정체를 모른다. 작가를 추적하기 위한 언론의 잇따른 보도, 지목된 인물들의 반응, ‘불필요한 신상 털기’와 ‘독자의 알 권리’ 논란이 대립하면서 작가에 대한 주목도와 판매 부수는 더 올라간다.

9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비난한 NYT 익명 칼럼, 과거 문학잡지 악스트(Axt)가 익명 영화평론가 듀나와 가진 인터뷰도 마찬가지다. 기고자나 인터뷰이의 정체가 밝혀졌다면 이만한 주목을 받았을까.

누구나 더 많은 관심을 원하고 더 유명해지려다 보니 역설적으로 익명이 더 주목받는 시대. 익명 다음엔 무슨 수단으로 관심을 유발해야 할까. 하나는 분명하다. 어떤 형태든 타인에 대한 공감과 배려는 꼭 필요하다.
 
하정민 디지털뉴스팀 차장 dew@donga.com
#익명#관종#관심종자#뱅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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