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이건혁]‘라돈 침대’에 침묵하는 원안위원장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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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혁 경제부 기자
이건혁 경제부 기자
대진침대에서 구입한 매트리스를 수년째 사용해오던 A 씨는 15일 해당 침대에서 기준치를 넘는 방사선이 나온다는 소식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온 가족이 함께 살을 맞대고 뒹굴었던 시간을 떠올리니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국가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가 방사선량이 기준치 이하라고 했던 기존 발표를 불과 5일 만에 뒤집으면서 어떤 발표도 믿을 수 없게 됐다.

A 씨는 대진침대와 원안위, 국가방사선비상진료센터에 연이어 전화를 걸었지만 허사였다. A 씨는 “책임자가 나와 머리라도 숙여야 하는 것 아니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번 사태를 수습할 책임이 있는 기관은 원안위다. 생활 속 방사선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가공제품에서 발생하는 방사선을 측정해 공표하는 게 원안위의 임무 중 하나다. 이 조직을 이끌고 있는 강정민 원안위원장은 라돈 침대의 존재가 알려진 이달 초 이후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다. 10일 중간발표, 15일 2차 조사 결과 발표, 21일 국무총리 주재 국무회의까지, 그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강 위원장은 15∼17일 경북 경주시에서 열린 국제원자력규제자협의회(INRA)를 주관했다. 21일 국무회의에는 출석 요청을 받지 않았다고 했다. 해외 출장을 가거나 휴가를 간 것도 아니라고 했다.

원안위 관계자는 “강 위원장이 실무자들에게 부담을 갖지 않고 일할 수 있도록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썼고 발표도 실무자들에게 맡긴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강 위원장은 올해 초 취임 이후 기자간담회를 자처하며 원자력발전소 주변 주민들의 방사선 영향을 전수조사 하겠다는 계획을 직접 발표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 왔다. 자신의 탈(脫)원전 성향을 드러내며 정권과 코드를 맞추고 있다는 시각이 많았다. 그런데 라돈 침대에 대해서 유독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게 어쩐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자신이 이끄는 조직이 라돈 침대 사태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음에도 조직의 장(長)이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 건 직무유기나 다름없다. 원안위는 최초 조사 때 침대 겉커버만 조사하고 안쪽 스펀지를 조사하지 않은 사실이 확인돼 부실조사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원안위는 브리핑 도중 미흡한 리콜 절차에 대한 지적이 나오자 “리콜을 해본 경험이 없어 미숙했다”는 무책임한 변명을 늘어놓기도 했다.

이번 사태의 1차적 책임은 제품을 제대로 만들지 못한 제조사에 있다. 하지만 미흡한 후속조치로 국민적 불신을 키운 건 바로 원안위다. 국무총리가 국무회의에서 원안위를 질타하기 전에 강 위원장이 수습에 나섰어야 했다. 강 위원장은 지금 탈원전이라는 ‘거대 가치’만 좇다가 국민적 신뢰를 잃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건혁 경제부 기자 gun@donga.com
#대진침대#라돈 침대#원자력안전위원회#강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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