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임우선]교육부가 없어져도 되는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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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우선 정책사회부 기자
임우선 정책사회부 기자

교육부가 두 개의 대학수학능력시험 개편안을 10일 내놨다. 일부 과목만 절대평가하는 1안과 전 과목을 절대평가하는 2안이 그것이다. 개편안 브리핑에서 교육부는 “국민 의견을 물어 1안 아니면 2안으로 결정할 것”이라며 “‘믹스(절충)안’은 없다”고 했다. 국민은 무엇도 정답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어쨌든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한 셈이다.

새 시대에 걸맞은 새 교육을 위해 수능을 바꾼다면서 개편 시안조차 보기 2개짜리 ‘객관식’으로 낸 것이 아이러니했다. 선택 가능한 2개 안을 제시한 건 얼핏 민주적으로 보이나 실상은 단일안 제시보다도 못하다. 만약 하나의 안을 제시한 뒤 의견수렴을 했다면 다양한 부분에서 국민들의 의견이 반영될 기회라도 있었을 게다. 그러나 개편안이 객관식 문항으로 제시되면서 국민은 교육부가 굴러갈 세금을 내고, 그 정책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 당사자임에도 1번 아니면 2번을 고를 제한적 권리밖에 가질 수 없게 됐다.

사실 객관식은 교육부에 제일 간편한 방식이다.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했더니 여론의 방향도 ‘무엇이 근본적으로 가장 발전적인 수능이냐’보다 ‘1번이냐 2번이냐’로 가고 있지 않은가. 확실히 ‘열린’ 논의보다는 덜 골치 아파진 셈이다.

차라리 교육부의 ‘보기’ 중 확실한 정답이 있었더라면 좋았겠지만 딱히 그렇지도 못한 게 문제다. ‘어정쩡한 절대평가’와 ‘완전 절대평가’란 2안 중 우리 교육의 미래 비전을 명확히 보여주는 것은 무엇인가. 이 중 하나를 고르면 무엇이 더 교육적으로 나아지는가. ‘장관님’의 신념과도 같은 2안과 국민 반발과 청와대의 속도 조절 주문을 적당히 타협시킨 1안을 복수로 제시하고 최종 선택은 국민 여론에 떠넘긴 느낌이다. 이게 정책인가?

교육부는 교육부 사람들만으로는 모자라 1년 5개월간 수천만 원을 들여 외부 연구용역팀까지 굴렸으면서도 이 두 안이 ‘보기’로 올라오게 된 정책연구 근거조차 충실히 밝히지 않았다. 국민이 제대로 수능 정책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이와 직접적으로 엮여 있는 고교 내신평가방식과 대입제도 손질, 특목고·자사고 존폐 문제, 학생부종합전형에서의 일반고 간 격차 상쇄 대책 등에 대한 정책 정보가 반드시 필요함에도 교육부는 ‘국가교육회의’ 핑계만 댈 뿐 어느 것도 제대로 답하지 못하고 있다.

개편안 공개 다음 날 서울교대에서 열린 첫 대국민 공청회에서 국민들은 일제히 분노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한 학부모는 “정부는 아이들이 얼마나 심한 석차 경쟁에 시달리는지, 얼마나 비싼 비용을 학부모들이 치르는지 모르는 것 같다”며 “새 정부에 배신감을 느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엄마는 “학교 교육만으로는 아무것도 되는 게 없는데 정부가 이상만 외친다”며 울먹였다. 벌떡 일어난 한 아빠는 “교육부는 똑바로 일하라”며 “왜 2개 안을 던져놓고 학부모들을 싸움 붙이느냐”고 호통쳤다.

교육부의 섭외로 토론에 참석한 4명의 전문가마저도 1안 혹은 2안에 완벽히 만족하지 않았다. 2안을 지지한 1명은 ‘조건부’라는 전제하에 지지했고, 1안을 지지한 3명은 ‘2안보다는 낫다’는 이유로 1안을 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부는 1안 아니면 2안 중에 고른다는 입장이다. 공청회에 왔던 한 학부모는 “벽을 보고 얘기해도 이보다는 낫겠다”며 자리를 떠났다. 객관식에 정답이 없다고 외치는 건 단상 밑의 국민뿐이었다.

임우선 정책사회부 기자 im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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