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정원수]대법관 인사검증의 퇴행, 국회의 ‘견제권’ 포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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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수 사회부 차장
정원수 사회부 차장
김상환 대법관 후보자는 5일 당일치기 휴가를 떠났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해 그가 대법관 후보자가 된 것은 올 10월 2일. 그 다음 날부터 김 후보자는 63일 동안 대법원 청사 5층 임시 사무실로 출근했다. 두 달 넘게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리기를 기다리면서 긴장을 풀지 못하고 지내다가 청문회를 마친 바로 다음 날 휴가를 떠난 것이다. 청문회는 점심식사 시간을 빼고 6시간 25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대법관은 ‘지혜의 기둥’, ‘정의(justice) 그 자체’로 불린다. 대법관 후보자가 정말 ‘지혜의 기둥’인지, ‘정의 그 자체’가 맞는지 검증하는 절차가 국회 인사청문회다. 국회가 그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 건가. 2000년 국회가 인사청문회를 처음 도입할 때 벤치마킹한 미국 의회에 비해 우리 국회의 검증 시스템은 낙제라고 할 수밖에 없다.

첫째, 의심이 있어도 검증을 끝까지 하지 않는다. 대법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는 하루 일정으로 너무 짧다. 김 후보자 청문회에 앞서 열렸던 이동원 대법관 청문회는 단 5시간 30분 만에 끝났다. 노정희 대법관과 김선수 대법관 청문회는 각각 6시간 45분, 8시간 35분 걸렸다. 지금까지 청문회를 통해 자질 문제가 제기된 대법관 후보자들이 적지 않았지만 국회에선 여야 없이 “전례가 없다”며 ‘추가 청문회’를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반면 미국 상원의 연방대법관 인사청문회는 최소 4일간 열린다. 브렛 캐버노 연방대법관은 5일 동안 청문회장에 섰다. 9월 4∼7일 청문회가 열렸는데, 그가 10대 때 성폭행을 했다는 의혹이 불거지자 9월 27일 다시 청문회가 열렸다. 앞서 1991년 클래런스 토머스 연방대법관의 첫 청문회 직후 불거진 성희롱 의혹으로 청문회가 한달 후 재개됐던 상황과 똑같다.

둘째, 우리 국회는 대법관 후보자에게 너무 너그럽다. 2000년 7월 첫 대법관 후보자 청문회 이후 모두 43명의 대법관 후보자 가운데 중도 낙마는 1명밖에 없다. 42명은 국회 본회의 인준을 통과했다. 낙마 비율은 2.3%다. 반면 미국은 1789년 이후 연방대법관 후보자 163명 중 37명(22.7%)이 낙마했다. 미국의 낙마 비율이 한국의 약 10배다. 미국에는 연방대법관이 되기 위한 조건으로 ‘예수 그리스도, (로마법을 집대성한) 유스티아누스 로마 황제, (초대 대법원장인) 존 마셜을 합쳐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인사 검증이 까다롭다.

한국 국회는 장관 후보자를 상대로 ‘현미경 검증’을 한다. 뉴욕타임스 조사 결과 미국 건국 이래 500명 이상의 장관 가운데 의회에서 인준이 부결되거나 지명이 철회된 후보자는 23명뿐이다. 반면 한국은 인사청문회 제도가 도입된 지 20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낙마한 장관 후보자가 20명이 넘는다.

셋째, 미국은 인사 검증 절차를 끊임없이 진화시켜 왔는데 한국은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상원에 후보자가 나와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는 방식은 1955년 시작됐다. 초기에는 의원들이 자질에 대한 6개 정도의 질문만 하다가 지금은 전체 질문 수가 사회적 쟁점 등 500∼700개로 늘었다. 1981년 인사청문회 TV 생중계가 도입된 뒤 의원들의 질문은 계속 정교해졌다. 반면 우리 국회는 오전 1차 질의와 오후 보충질의 등이 끝나면 서둘러 청문회를 끝내는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법행정권 남용 및 재판 개입 의혹으로 사법부가 70년 역사상 최악의 위기에 빠졌다. 대법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한 지난 18년 동안 부적격자를 한 명밖에 걸러내지 못한 국회의 허술한 검증 시스템이 위기를 부른 건 아닐까. 사법부 견제는 국회 본연의 의무다.
 
정원수 사회부 차장 needjung@donga.com
#대법관#대법관 청문회#대법관 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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