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형준]내우외환 내몰린 철강산업, 호황기 올 때까지의 생존법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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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준 산업1부 차장
박형준 산업1부 차장
30년 동안 냉연강판과 강관 등 철강제품을 팔아온 철강 영업맨 A 팀장(54). 철강산업은 ‘산업의 쌀’이라 불릴 정도로 전후방 산업 연관효과가 컸기에 국가가 발전할수록 회사도 성장했다.

그는 철강 영업에 자부심을 느끼며 열심히 일했다. 회사는 그가 무사히 딸, 아들을 대학까지 보낼 정도로 튼튼한 재정적 울타리를 쳐줬다.

하지만 요즘 그의 표정은 무척 어둡다. “지난해 말부터 회사가 어려워졌다. 2, 3년 더 이 상태로 가면 우리 회사뿐 아니라 여러 철강회사가 문을 닫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년이 거의 다 됐으니 그나마 견딜 만하단다. 후배들을 생각하면 아찔하다고 했다. 잘나가던 한국 철강산업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기본적으로 중후장대(重厚長大)한 철강산업 스타일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잘 맞지 않는다. 고로 1기를 만들려면 3, 4년 동안 약 3조 원을 투자해야 한다. 압연설비를 새로 들이려면 2, 3년 동안 약 6000억 원을 투자해야 한다. 정보기술(IT) 기업과 달리 4차 산업혁명에 빠르게 대응하기 힘들다.

한국에서 생산된 철강의 약 80%는 자동차, 조선, 건설 분야에서 소비된다. 그런데 요즘 자동차와 조선 경기가 엉망이다. 수요가 줄면 생산을 줄여야 한다. 하지만 중후장대한 산업 특성상 생산 규모를 하루아침에 줄이기 힘들다. 생산된 제품을 손해 보고 팔거나 재고로 쌓아두고 있다.

그렇다면 살길은 수출이다. 하지만 수출길도 점차 막히고 있다. 먼저 중국 변수. 중국은 2006년부터 순수출국으로 바뀌었다. 워낙 대규모로 저가 철강제품을 생산해 세계에 쏟아내다 보니 전 세계적 공급 과잉을 유발시켰다. 지난해 전 세계 조강(쇳물) 생산능력은 23억8000만 t인데 조강 수요는 16억3000만 t에 불과하다. 글로벌 공급 과잉은 7억5000만 t. 이 중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약 60%(4억6000만 t)다.

거기에 미국발(發) 보호주의 움직임이 결정타를 날렸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올해 6월 유럽연합(EU), 캐나다 등 철강제품에 25% 관세 폭탄을 투하했다. 그러자 EU도 7월 전 세계 철강제품에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잠정 조치를 발동했다. 한국 기업들은 이래저래 수출 물량 감소를 겪고 있다.

어찌 손쓸 방도가 없다는 점 때문에 A 팀장의 고민은 더 깊다. 조선과 자동차 경기를 갑자기 부양시킬 수도 없고, 주요국의 관세 폭탄을 혼자 막을 수도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30년 동안 영업한 ‘촉’으로 그는 두 가지 방향성을 제시했다.

한국 역시 국내 철강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장벽을 쳐야 한다. 한국은 생산량의 약 40%를 수출하면서 국내 수요의 약 40%를 수입하는 기형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

반면 일본은 생산량 40%를 수출하지만 수요의 10% 정도만 수입한다. 까다로운 인증, 폐쇄적 유통시장 등 일본의 비관세장벽을 참고할 만하다.

개별 기업으로선 고통스럽겠지만 사업 재편도 필요하다. 이미 일본, EU는 인수합병(M&A)을 통한 대형화와 비효율 설비 감축을 실시하고 있다. 중국 역시 2016년부터 부실 철강회사를 정리하고 있다.

한국 기업도 수요 침체 품목은 설비를 줄이고, 경쟁 우위 품목은 부가가치를 높여 수출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 그래야 호황기가 올 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다.
 
박형준 산업1부 차장 lovesong@donga.com
#철강산업#제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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