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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윤승옥]‘어기면 끝까지 보복하라’는 이기적인 그들만의 불문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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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윤승옥]‘어기면 끝까지 보복하라’는 이기적인 그들만의 불문율

윤승옥 채널A 스포츠부장 입력 2018-09-12 03:00수정 2018-09-1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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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옥 채널A 스포츠부장
투수가 던진 공이 날아가던 새를 맞히고 바닥에 떨어졌다고 하자. 이 경우 스트라이크일까, 볼일까. 설마 이런 황당한 경우도 규칙에 명시돼 있을까 싶은데, 실제로 있다. 야구 규칙(7.05)은 이 경우 ‘카운트하지 않는다’고 나와 있다. 해당 투구를 없던 일로 한다는 것이다. 백과사전만큼이나 방대하다는 야구 규칙에는 이렇듯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상황이 담겨 있다.

그런데 야구에는 암묵적인 규칙인 ‘불문율’이라는 게 또 있다. 점수 차가 많이 날 때는 번트나 도루를 해서는 안 된다, 홈런 치고 너무 과도한 세리머니를 하지 말라, 슬라이딩 때 스파이크를 높이 들지 말라 등 10여 가지다. 조항 수는 규칙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적지만 구속력은 규칙보다 훨씬 강하다. 불문율을 어기면 빈볼(위협구)이 날아들고, 벤치클리어링(집단 몸싸움)이 벌어진다. 목숨 걸고 싸운다.

불문율에 대해서는 찬사만큼이나 반대 의견도 많다. 찬성 측은 불문율의 핵심은 배려와 공감이라, 불문율이 없으면 야구장은 위험해지고 경기는 품위를 잃는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반대 측은 팬들이 원하는 건 최선을 다하는 경기이지 선수들 간 친목 도모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또 점수 차가 클 때 필요한 건 위로가 아니라 분발이라고도 말한다. 그런데도 야구인들은 “우리끼리 이렇게 정했으니 그렇게 알고 보시라”라고 말하니 팬들을 무시하는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불문율의 본질은 상대에 대한 배려일까, 아니면 자기중심적 편향일까. 야구인들의 사고는 어느 쪽에 가까울까. 평소 답을 내리기 어려운 문제였는데 이번에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를 보면서 명확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이번 대표팀은 금메달을 목표로 24명 전원을 프로선수로 구성했다. 아마추어 대회였지만 아마추어 몫의 한 자리마저 없앴다. 그 자리에 병역으로 문제가 된 프로선수를 선발했다. 팬들은 불공정성에 분노했지만 ‘우리끼리 이렇게 정했으니 그렇게 알고 보시라’는 투였다. 경기력도 최선과는 거리가 멀었다. 호화 멤버들의 플레이는 감동이 없었고 금메달을 향한 부담감만 가득했다. 팬들은 화가 났지만 해명도 사과도 없었다. 마치 그들끼리의 친목(병역 특례)이 더 중요한 가치였던 것처럼, 말없이 해산했다. 불문율을 비난했던 팬들의 논리를 그대로 닮았다. 야구계는 그간 지독한 자기중심적 불문율을 향유했던 것이다. 이번 대회 때 그 사고의 본질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아시아경기 직후 프로야구 넥센과 SK의 경기에서 빈볼에 이어 벤치클리어링이 나왔다. 누군가가 불문율을 어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면서 과거처럼 배려나 공감 같은 가치를 연결시킬 수 없었다. 그러니 그 행위는 볼썽사나운 싸움 정도로만 읽혔다. 이번 대표 팀에 참가한 이정후(넥센)가 “팬들이 없으면 야구는 공놀이에 불과하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막내였지만 가장 어른스러운 말이었다. 그런데 정작 야구계 어른들은 한마디도 없다.

야구를 관전하기에 날씨는 더없이 좋은데 관중은 줄고 있다. 국민 정서를 외면한 야구계를 향해 팬들은 돌직구를 던지고 있다. 야구 불문율 중 가장 과격한 것이 ‘끝까지 보복하라’는 것이다. 야구계가 반성하지 않는 한 팬들의 분노는 쉽게 가시지 않을 것 같다. 이제는 ‘그들만의 리그’에서 벗어나 세상과 눈높이를 맞추기 바란다.
 
윤승옥 채널A 스포츠부장 tou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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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불문율#빈볼#벤치클리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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