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용석]모하비 사막의 이름 릴레이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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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 산업1부 차장
김용석 산업1부 차장
미국 서부 모하비 사막에 공항이 하나 있다. 모하비 항공우주포트(Mojave Air and Space Port)라는 이름의 이 공항엔 여객기는 보이지 않는다. 한쪽에는 퇴역한 전투기와 여객기가 늘어선 비행기 무덤이 있고, 다른 쪽에선 우주를 향하는 최첨단 로켓이 시험 발사된다.

공항 정문 앞에는 커다란 구형 로켓이 하나 전시돼 있다. 커다란 알약처럼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다. 이 로켓의 이름은 ‘로터리 로켓 로턴 ATV(rotary rocket roton ATV). 이 로켓의 이야기엔 쟁쟁한 미국 기업가들의 이름이 연달아 등장한다.

1990년대 이 공항을 무대로 우주를 오갈 수 있는 회수 가능한 재활용 로켓을 만들자는 프로젝트가 나왔다. 재활용 로켓은 우주 비행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기에 일반인 우주여행의 길을 여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다. 로터리 로켓을 개발한 엔지니어 게리 허드슨은 로켓 머리에 프로펠러를 달아 우주로 갈 땐 로켓 추진력으로 가지만 내려올 땐 프로펠러를 이용해 (마치 형사 가제트처럼) 수직 비행으로 착륙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그의 도전 의욕을 불러일으킨 출발점은 실현 불가능한 과제에 도전하는 모험가를 자극하기 위해 세운 엑스프라이즈재단이다. 페이팔을 창업해 큰돈을 번 일론 머스크와 구글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가 이 재단의 창립자이자 후원자로 참여했다.

엑스프라이즈재단이 후원한 여러 프로젝트 중 회수 로켓 프로젝트엔 안사리라는 이름의 기업가가 1000만 달러의 상금을 걸었다. 이란에서 이민 와 통신 기술 기업을 설립해 돈을 번 기업가다. 우주 탐험에 대한 열정 때문에 돈을 댔다. 로터리 로켓 팀은 투자를 모아 모하비 사막에서 두 차례 착륙 비행 시험을 하는 데 성공했지만 결국 로켓 개발에 실패하고 파산한다. 공항 측은 도전을 기리기 위해 이 로켓 실물을 공항에 영구 보존했다.

로터리 로켓에 이어 회수 로켓 실험에 도전한 팀엔 빌 게이츠와 함께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한 폴 앨런의 이름이 등장한다. 폴 앨런의 투자로 ‘스페이스십 원’ 로켓을 만든 개발팀은 2004년 마침내 로켓 회수에 성공하면서 상금을 거머쥔다. 이를 이어받은 것은 영국 출신 기업가 리처드 브랜슨이다. 음반 사업과 항공 산업으로 돈을 번 브랜슨은 스페이스십 원을 인수한 뒤 1억 달러를 쏟아 부어 2013년 스페이스십 투를 개발하는 데 성공한다.

엑스프라이즈재단 이사로 프로젝트 탄생에 기여한 머스크도 다시 그 뒤를 이었다. 스페이스X를 설립하며 회수 로켓 개발에 발을 들였고 올해 초 세계 최강이라는 팰컨헤비 로켓에 전기 자율주행차 테슬라를 실어 쏘아 올리는 엄청난 우주쇼를 벌여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렇게 이어지는 회수 로켓 개발 도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로턴 로켓 앞에는 이런 소개문이 적혀 있다. “혁신에 대한 도전을 기리기 위해 로켓을 전시한다.”

미국을 여행하면서 느낀 한국과 다른 점 중 하나는 곳곳에 남아 있는 이름들이다. 하버드대 도서관 같은 유명 건물은 물론이고 동네 작은 벤치 하나하나에도 기부자의 이름이 적혀 있다. 공동체를 위해 크고 작은 기여를 한 뒤 각자가 남긴 이름이 층층이 쌓이며 진보를 위한 한걸음 한걸음을 이어 나가는 것 같아 보였다.

반면 우리나라는 이름 지우기에 골몰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세상이 바뀔 때마다 과거 인물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며 지워지는 이름이 한 박스씩이다. 그렇다 보니 다음 세대가 존경할 만한 인물이 남아나질 않는다. 이런 일이 이어지면서 존경할 만한 사람들의 이름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진보에 대한 믿음도 사라지는 것 아닐까.
 
김용석 산업1부 차장 yong@donga.com
#모하비 사막#로터리 로켓#이름 지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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