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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전성철]망신 주기 수사로는 ‘갑질 회항’ 못 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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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전성철]망신 주기 수사로는 ‘갑질 회항’ 못 막는다

전성철 사회부 차장 입력 2018-05-25 03:00수정 2018-05-25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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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철 사회부 차장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24일 오후 서울출입국·외국인청 이민특수조사대 청사 앞 포토라인에 섰다. 2014년 12월 이른바 ‘땅콩 회항’으로 검찰에 출석한 지 3년 5개월 만이다.

조 전 부사장의 죄명은 출입국관리법 위반이다. 모친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과 함께 필리핀 국적의 가사도우미를 대한항공 연수생으로 위장해 국내로 데려온 혐의다. 법전을 검색해 보니 법정형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가볍지 않았다.

문득 궁금증이 들었다. 주변의 맞벌이 부부 중에는 중국이나 필리핀 국적의 보모 또는 가사도우미를 고용하고 있는 이들이 드물지 않다. 그중 일부는 불법체류자다. 그러면 그들도 적발이 되면 그런 처벌을 받는 걸까.

출입국관리법 위반 등 외사(外事) 범죄를 다뤄본 경험이 많은 검사들에게 물어보았다. 한 검사는 “불법체류자 가사도우미를 고용한 사람을 형사처벌하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 그런 경우 불법체류자를 출국 조치하고 사건을 종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검사는 “낙태죄하고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낙태는 여전히 위법이지만 낙태죄로 처벌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지 않나”라고 말했다.

검사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조 전 부사장이 필리핀인 가사도우미를 고용한 과정은 출입국관리법을 명백하게 어긴 것이다. 가사도우미를 대한항공 연수생으로 꾸며 입국시키면서 회사를 불법의 도구로 썼다는 점에서 죄질도 나쁘다. 하지만 불법체류자를 가사도우미로 채용한 범죄 그 자체만 놓고 보면 조 전 부사장처럼 피의자로 입건돼 심각하게 조사를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같은 죄목으로 형사처벌을 받는 경우는 성매매 등 범죄 목적으로 외국인을 불법 입국시킨 경우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도 출입국·외국인청은 조 전 부사장을 언론에 출석 시간까지 알리며 소환했다. 출입국·외국인청이 이번 일을 계기로 불법체류자 가사도우미 고용을 강력하게 처벌하기로 한 것일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맞벌이 가정의 보모, 가사도우미 구인난이 심각한 상황에서 불법체류자를 고용한 이들을 죄다 형사처벌하겠다고 나섰다가는 여론의 뭇매를 맞을 수 있다. 조 전 부사장이 공개 소환된 것은 그가 온 국민의 ‘괘씸죄’에 걸린 조씨 일가라는 점이 큰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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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위를 이용해 불법을 저지르고, 회사 직원이나 ‘을(乙)’의 위치인 협력업체 관계자를 인격적으로 모독한 조씨 일가를 용서하고 넘어갈 수는 없다. 하지만 죄에는 그에 합당한 벌을 줘야 한다. 불법체류자 가사도우미를 썼다고 대대적 공개수사를 하는 것은 처벌이 아니라 망신 주기다.

사고를 쳤으니 하루빨리 망신을 주고 수갑을 채워야 한다는 식의 처벌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조 전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만 봐도 그렇다. 조 전 부사장은 비행기를 탑승 게이트로 되돌린 혐의(항공보안법 위반)와 박창진 사무장 등 승무원을 폭행하고 비행기에서 내리도록 강요한 혐의로 처벌을 받았다.

그러나 대주주 신분을 이용해 회사에서 특권을 누리거나 불법을 저지르며 회사에 손해를 끼친 일과 직원들에게 상습적으로 ‘갑질’을 일삼으며 정신적, 육체적 피해를 끼친 더 큰 잘못에 대해서는 벌을 받지 않았다. 그 결과가 조 전 부사장의 여동생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벼락 갑질’이다.

이번에는 조씨 일가의 잘못이 무엇인지 제대로 짚어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갑질 회항’은 끝나지 않는다.
 
전성철 사회부 차장 dawn@donga.com

#조현아#땅콩 회항#갑질 회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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