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하준경]서울 집값, 어디로 가나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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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 희소성을 낮추기 어려운 현실에서
가장 시장친화적인 방법은 보유세 작동…
현재는 실효세율 낮고 과세표준 부정확
경제적 가치에 합당하게 세금 산정해야 똑바른 계산이 모든 대책의 출발점

하준경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하준경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미국인들 중엔 ‘적정 집값은 연소득의 두세 배’라고 하는 이들이 많다. 집값이 소득의 네 배만 넘어도 빚 갚기가 버겁기 때문이다. 미국 대도시의 소득 대비 집값 비율을 보면 시카고(3.8배), 댈러스(3.8배)처럼 ‘약간’ 비싼 곳도 있지만 뉴욕도시권(5.7배), 시애틀(5.9배)처럼 ‘매우’ 비싸거나 샌프란시스코(9.1배), 로스앤젤레스(9.4배)처럼 ‘극심하게’ 비싼 곳도 있다(데모그라피아 보고서). 아시아를 보면 도쿄-요코하마(4.8배), 싱가포르(4.8배)처럼 생각보단 덜 비싼 곳도 있지만 중국 쪽엔 상하이(14배), 베이징(14.5배), 홍콩(19.4배)처럼 차원이 다른 도시들이 있다.

서울의 중간 집값은 중간 소득의 12배 정도다(KB국민은행 자료). 미국인들이 볼 땐 비싸지만 홍콩인들이 볼 땐 싸다. 누가 맞나. 집을 사는 젊은이 입장에서 계산해보자. 집값이 소득의 12배면 30년간 소득의 3분의 2를 집에 써야 한다(대출금리 3.5% 가정). 지속 불가능한 거품이다. 그럼 이제 서울 집값은 떨어질까?

답은 간단치 않다. 홍콩 집 소유자의 시각에서 보자. 집은 투자 수단이면서 최고의 가치저장 수단이다. 2002년에 홍콩 집값은 소득의 4.6배였지만 묻어두니 오르지 않았나. 보유세는 미미해 부담이 안 된다. 세계 곳곳에 집을 사두고 가끔씩 들르는 게 임대하는 것보다 속 편하다. 오죽하면 홍콩 밴쿠버가 ‘빈집세’를 도입하나. 그래도 중국 돈을 비롯해 안식처를 찾는 돈들은 많다. 중국인이 접근하기 쉬운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에서 집값이 괜히 올랐나.

세계적으로 주요 도시 부동산이 가치저장 수단으로 더욱 주목받게 된 것은, 기대수명이 느는 가운데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시작돼 장기간 부를 저장할 수단이 절실해졌기 때문이다. 좋은 길목 땅은 내구성과 함께 희소성도 갖추고 있다. 저금리와 양적완화를 겪으며 법정화폐에 대한 믿음은 약해졌고, 금융자산은 불안하다.

단, 좋은 부동산은 타인의 침탈을 막는 비용과 인프라 유지비가 큰데, 이 문제를 국가가 어떻게 다루느냐가 관건이다. 고대 로마제국처럼 땅 소유자가 직접 병역을 담당하게 하고 무기도 자기 돈으로 사게 하되 재산 없는 자들은 병역을 면제하는 식으로 대응하면 땅의 매력은 떨어질 것이다. 미국처럼 매년 보유세를 집값의 1% 이상 부과해 인프라 유지에 쓰고 새로 개발한 곳에는 추가 분담금을 매겨도 땅 쏠림은 줄 것이다. 그러나 중국 홍콩 한국처럼 보유세가 작아 땅 소유권을 지키고 가치를 유지하는 비용 대부분을 다른 이들이 내주는 시스템에선 땅만 한 것이 없다.

기존 보유세 틀에서 저금리가 지속되고 1차 베이비붐 세대(1955∼63년생)에 이어 전국의 2차 베이비붐 세대(1968∼74년생)까지 서울 부동산을 부의 저장수단으로 삼게 되면 서울 집값은 홍콩을 향할 것이다. 그 끝은 불확실하지만 밝지는 않다. 영국 중앙은행의 보고서에 따르면 땅이 부의 저장수단으로 쓰일수록 생산적 자본은 줄고 가계부채는 는다. 땅 주인들이 작은 독점력을 활용해 ‘버티기’로 땅값을 높이면 땅값은 그 자체가 진입장벽이 돼 땅의 효율적 이용도 어려워진다.

땅의 희소성을 낮추기 어려운 현실에서 문제 해결을 위한 가장 시장친화적인 방법은 보유세다. 보유세 작동의 전제는 부동산의 ‘경제적 가치’를 시가 평가해 과세하는 것인데, 땅부자와 공무원의 유착이 심한 나라일수록 과세표준을 임의로 낮춰 세금을 깎는다. 이에 대해 경제학자 아널드 하버거는 집주인으로 하여금 매도호가를 공표하게 한 후 호가에 보유세를 부과하면 시장왜곡을 줄여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고 한다. 이런 관점에서 한국을 보면 갈 길이 멀다. 보유세 실효세율이 낮을 뿐 아니라 과세표준이 부정확하다. ‘공시가격’은 비싼 집에 더 많은 감세 혜택을 줘 의사결정을 왜곡하고, ‘공정시장가액비율’이라는 추가 할인장치도 있다. 세금을 깎아줄 땐 깎아주더라도 집의 경제적 가치에 합당한 세금이 얼마인지 정확히 산정하고, 누가 얼마를 왜 할인받는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 부동산의 가치저장 기능이 주목받을수록 공시가격 현실화가 중요하다. 계산을 똑바로 하는 것이 모든 대책의 출발점이다.
 
하준경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부동산#집값#보유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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