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donga.com

[동아광장/박일호]‘너’와 ‘나’를 가르는 신화적 사고의 위험
더보기

[동아광장/박일호]‘너’와 ‘나’를 가르는 신화적 사고의 위험

박일호 이화여대 조형예술대 교수입력 2018-01-13 03:00수정 2018-01-13 03:00
뉴스듣기프린트
트랜드뉴스 보기
선과 악, 흑과 백… 이분법적 사고방식
트럼프와 김정은도 세계를 둘로 갈라
태극기와 촛불도 서로에 마음 열기를
박일호 이화여대 조형예술대 교수
“인간은 상징적 동물이다.” 독일 철학자 에른스트 카시러(1874∼1945)의 말로 인간은 상징을 만들고 사용할 줄 아는 동물이며, 상징을 통해서 세계를 바라보고 이해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세계를 직접 다루고 이해하지 않으며, 우리가 만들어낸 문화적 산물인 신화, 언어, 과학 등 상징체계를 통해서 세계의 경험을 정리해 나간다는 뜻이 담겨 있다. 신화와 과학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인간 정신의 발전 단계에 따라 나타나는 경험의 객관화 방식이라고 카시러는 말한다. 감성과 상상력에 치우친 이해와 객관화의 산물이 신화라면, 이성에 의한 논리적 원리나 개념에 치우친 이해와 객관화 방식이 과학이다.

카시러는 이 상징체계들이 우열 관계라기보다 세계를 이해하는 서로 다른 방식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우열 관계를 인정하지는 않지만 신화적 사고가 현대사회에 끼치는 영향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의 마지막 저서인 ‘국가의 신화’는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여기서 신화적 사고나 상징에 의해 조종되는 비이성적인 세력이 문명인의 정신을 어떻게 파괴하고 위협해 왔는가를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밝히고 있다. 그리고 신화적 사고에 따라 움직인 가장 대표적인 형태가 제1,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전체주의 정권이라고 주장했다.

신화가 어떻게 이토록 위험한 것이 될 수 있을까. 우선 신화가 세계를 선과 악, 나와 너, 흑과 백 등의 양자 대립 구도로 나누고 서로 배타적인 범주로 다룬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태양신을 숭배하는 나라의 신화는 태양신을 숭배하지 않는 나라와의 차이점을 바탕으로 자신의 관점을 합리화하려 한다. 신화의 또 다른 특징은 세계를 객관적으로 보지 않고, 감정을 통해서 이해하고 감정을 통한 유대감을 강조한다는 점인데, 이 점이 신화의 양자 대립 구도를 떠받치게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신화는 불가해한 자연 현상의 기원이나 의미를 초자연적 존재를 빌려 설명하는 이야기가 되지만, 그것을 넘어 사람들이 사회를 이해하는 기준과 규범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원시인과 고대인의 세계에서 신화가 그들의 생각과 행동을 규제하고 강요하는 비합리적 이념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 카시러가 우려하는 신화적 사고의 문제점이다.

카시러 사후 70여 년이 지난 지금 그가 우려한 신화적 사고가 전 세계를 뒤덮고 있는 것 같다.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도널드 트럼프 정권의 미국과 그 안에서 쏟아내는 말 폭탄들, 옛날의 오욕을 씻고 새로운 대국으로 나아가겠다고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는 중국, 그 사이에서 다시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 무장하려 안간힘을 쓰는 일본, 핵무장으로 우리 주변을 긴장 속으로 몰아넣고 있는 북한의 전체주의 정권 등을 보면서 필자는 신화의 시대로 되돌아가는 것 같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세계를 이분법적 양자 대립 구도로 몰아가려 하고, 감정을 앞세워 나와 너, 선과 악으로 나누고 내부적 결속을 다지는 신화적 사고방식이 그들의 행동 안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위험하고 거친 신화의 시대를 헤쳐 나가야 할 우리는 지금 어떤가. 태극기와 촛불이라는 상징물로 자신들의 관점을 합리화하고, 그것을 보수와 진보 간의 대립으로 몰아가려 한다. 촛불은 일부 계층과 세력의 소유물이 아니라 변화를 원하는 우리 모두가 전국의 광장을 가득 메우며 들었던 상징물이고, 태극기 또한 4강 기록을 이룬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우리 모두가 환호할 때 함께 거리를 뒤덮었던 상징물인데 말이다.

하지만 필자는 더 많은 다수가 지금의 이런 모습을 우려하고 안타깝게 생각하며 우리 사회를 떠받치고 있다는 것을 보고 있고, 듣고 있다. 그래서 이제 태극기와 촛불이라는 상징물로 우리 모두가 같은 곳을 바라보고 같은 것을 이루려는 모습을 되찾을 수 있다고 믿고 싶다. 그리고 지금은 대립하지만 더 큰 발전을 위해서는 언제든지 서로에게 마음을 여는 진보와 보수의 화합도 기대한다. 그러려면 양자 대립적 구도와 감정적 공감대에 의존하는 신화적 사고의 유혹부터 멀리 떨쳐버려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박일호 이화여대 조형예술대 교수
주요기사




#에른스트 카시러#인간#트럼프#시진핑#김정은#선과 악#태극기 촛불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주요뉴스

1/3이전다음

부동산 HOT ISSUE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