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장영수]대통령 ‘지시’, 개발독재와 뭐가 다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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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 중시한다던 문 대통령, 감사원에 4대강 감사는 물론 국정교과서 폐지·지역인재 할당… 민주적 토론 없이 무조건 지시
‘개혁’이면 모두 정당화되는가… ‘개혁적 인사’라고 잘할 것 같은가
다수를 무시하는 정부는 독재의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장영수 객원논설위원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장영수 객원논설위원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어느덧 50일이 됐다. 정권 인수기간 없이 급하게 출범했지만 아직까지 국민의 호응은 매우 좋은 편이다. 문 대통령 스스로 준비된 역량을 보여준 점이 크게 작용했을 테지만 박근혜 정부와의 비교 또한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야당과의 밀월관계는 이제 막을 내리다시피 했으나 문 대통령의 개혁 의지와 국민의 지지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만큼 국민이 과거 국정에 대해서는 불신을, 변화와 개혁에는 열망을 갖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국정개혁에 대한 대통령의 소신과 때론 파격적이고 무리가 있는 인사에도 지지율이 높은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대통령 리더십의 본질과 문제점, 그리고 향후 보다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위해 개선할 점도 고민해 봐야 할 시점이 됐다.

문 대통령의 리더십은 자신의 생각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이는 민주적 리더십으로 알려져 있다. 청와대에서나 국무회의에서도 대통령을 비판하라고 하거나 엉뚱한 의견까지도 자유롭게 제시하라고 요구한 것에서도 이런 측면이 나타난다. 그러나 최근 민주적 리더십으로 보기 어려운 행동들이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4대강 문제에 감사원 감사를 ‘지시’했던 것을 비롯해 국정교과서 폐지, 공무원 및 공공부문의 블라인드 채용, 지역인재 30% 할당제 지시 등은 개별 사안에 타당성이 있는지를 떠나 민주적인 토의 과정을 볼 수 없었다. 대통령의 지시를 통해 일도양단(一刀兩斷)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바람직한 것인지 근본적인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만일 지시 내용이 타당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면 그 본질은 개발독재의 논리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개혁이라는 화두 하나만으로 모든 것을 정당화하려는 행태도 문제다. 최근 인사청문회를 보면 장관 후보자들의 업무 능력이나 전문성보다 개혁의 적임자인지를 가장 중요한 인선 기준으로 내놓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개혁의 필요성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고위공직자들이 이른바 개혁적 성향의 인물로 충원된다고 해서 개혁이 성공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개혁은 단지 기존의 체제를 바꾸고 기득권을 없애는 것만으로 성공하지 못한다. 새로 들어선 체제가 기존 체제보다 합리적으로 기능할 수 있어야 하고 새로운 기득권이 탄생하는 것을 최소화할 수 있어야 성공적인 개혁인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개혁 주체들의 업무 능력이나 전문성 또한 중요한 요소다.

두말할 것 없이 대통령은 모든 것을 포용해야 하는 국가 최고의 리더다. 따라서 대통령의 지도력은 다양한 인재를 포용하고 여러 주장을 흡수하며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율할 수 있어야 한다. 이때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진영 논리와 포퓰리즘이다. 그런데 지금 문 대통령을 둘러싼 찬반은 상당 부분 진영 논리 위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극복하지 않으면 결국 문 대통령도 절반의 대통령을 벗어나기 어렵다. 대통령으로서 21세기 대한민국의 미래를 밝히려면 전 국민의 역량을 포용하고 결집시키는 일이 필수적이다. 야당과는 협치를 하고 노동계로부터는 양보와 협력을 얻어내며 기업들로부터도 지원을 이끌어내야 하는 동시적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후보 시절 대선 과정에서는 적과 동지의 선명한 구별이 불가피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문 대통령은 특정 진영의 목소리와 요구에 구속되지 않고 국가 전체, 국민 전체를 하나로 묶어주는 상징적 존재가 돼야 한다. 그럴수록 포퓰리즘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는 점은 또 다른 함정이 될 수 있다. 끊임없이 요동치는 국민 다수의 의사를 무조건 수용해서도 안 되지만 무조건 무시할 수도 없는 일이다. 진정한 국민의 의사, 국민의 이익을 염두에 두되 과거 역사와 대한민국이 나아갈 미래에 비춰볼 때 어느 편이 다수의 목소리인지도 판별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새 정부의 국정운영이 하루빨리 안정될 필요가 있다. 내각 구성이든 여러 개혁 조치든 숨 가쁘게 단거리 경주하듯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현재는 역사의 연장선상 위에 놓여 있다. 역사를 돌이켜볼 때 다수가 원했던 것을 무시하는 정책은 오류의 반복을 피하기 어렵다. 현재의 다수를 무시하는 정부는 독재의 위험에 빠질 수 있다. 문 대통령이 이제부터라도 과거의 교훈을 디딤돌 삼아 진정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민주적 리더십을 보여주기 바란다.

장영수 객원논설위원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문재인#국정개혁#개발 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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