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donga.com

[동아광장/하준경]‘부동산 투기’ 다루는 법
더보기

[동아광장/하준경]‘부동산 투기’ 다루는 법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입력 2017-06-15 03:00수정 2017-06-15 03:00
뉴스듣기프린트
트랜드뉴스 보기
악성 고위험 투기수요는 집값이 떨어졌을 때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
과도하게 빚을 내… 집 사는 사람들 늘어나면 위험
맞춤형 정책도 빈틈이 있기 마련… 집값의 거품을 빼고 LTV-DTI 규제 강화해야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정부가 부동산 투기 단속을 시작했다. 동시에 실수요, 즉 실거주를 목적으로 집을 사려는 수요는 지원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투기수요와 실수요는 명확히 구분되는 개념이 아니다. 자산에 대한 수요는 모두 투기적 요소, 즉 매매 차익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가 정말 단속해야 할 악성 고위험 투기수요는 무엇인가. 그것은 집값이 떨어졌을 때 본인이 피해를 보는 것은 물론이고 남들에게까지 피해를 주게 되는 수요들이다. 자기 돈으로, 잘못돼도 혼자만 돈을 잃는 투기를 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수는 있어도 경제적 파급효과는 제한적이다. 그러나 남의 돈, 특히 금융기관 돈을 무리하게 빌려 집을 사는 행위는, 그것이 실수요라고 해도 집값 하락 시 부정적 파급효과를 유발하므로 규제 대상에서 빠져선 안 된다. 애초에 소비자의 평생예산 범위를 벗어난 수요는 구입 목적이 무엇이든 유효수요로 인정될 수 없다.

규제 없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도 없진 않았다. 투기의 위험성을 정확히 측정해서 보험처럼 위험 자체를 적절한 가격에 사고팔 수 있다면 시장 스스로 위험관리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보여주듯 최첨단 금융공학 기법들도 위험의 가격을 정확히 계산하는 데는 처참히 실패했다. 과다한 빚으로 집을 사는 행위가 집단적으로 이루어질 때의 거시적 위험성을 터무니없이 작게 평가했던 것이다. 금융당국이 자산 종류별·시기별 맞춤형으로 투기성을 판단해서 선별적으로 족집게식 규제를 하는 것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이나 총부채상환비율(DTI) 같은 거시건전성 규제가 필요하고, 또 이를 설계할 때는 시스템 전체를 보는 관점을 견지해야 한다.

아울러 LTV와 DTI는 차입자들이 빚 때문에 고통받을 가능성을 낮춰주는 금융소비자 보호의 수단이기도 하다. 그래서 LTV나 DTI를 강화하면 실수요자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는 시각은 매우 위험하다. 돈을 많이 빌리는 것이 혜택이 된다는 주장은 집값이 계속 오른다고 가정할 때만 타당하다. 만약 집값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면, 담보인정비율을 높게 쳐서 빚을 늘려주는 것은 곧 원리금을 갚기 어려울 때 거리로 나앉게 될 확률도 높여줌을 의미한다. 또 지금처럼 느슨한 DTI는 소득의 더 많은 부분을 원리금 갚는 데 투입하게 함으로써 실수요자들의 소득이 소비가 아니라 집값을 떠받치는 데 쓰이도록 유도한다.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대출을 받았다가 노숙인이 됐던 이들도 실수요자였다. 조지 W 부시 정부가 2000년대 초 ‘오너십(ownership) 사회’의 기치를 들고 미국인들 모두 집을 갖게 해주자고 외치며 느슨한 규제와 저금리로 실수요를 지원했던 결과는 투기와 거품, 그리고 금융위기와 대량실업이었다. 지금 미국이 왜 DTI를 한국 수도권의 60%보다 훨씬 강한 43%로 규제하고 있겠는가. 또 국제통화기금(IMF)은 왜 한국의 DTI를 30∼50%까지 내리고 아파트 집단대출에도 이것을 적용하라고 권고하겠는가.

건전성 규제를 정상화하면 부동산 경기가 식지 않을까, 혹시 거품이 터져 일본식 장기불황이 시작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만약 집값에 거품이 없다면 이러한 걱정들은 기우에 그치면서 시장은 오히려 더 건전하게 발전할 것이다. 반대로 거품이 있다면 더 늦기 전에 연착륙을 유도하는 것이 낫다. 일본에서는 거품이 너무 커진 다음 붕괴가 시작됐기 때문에 그 여파가 컸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고위험 투기는 실수요자가 따라붙을 때 성공한다. 특정 자산의 가치가 재평가돼 누구나 이것을 실수요하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는 선전, 저금리의 느슨한 대출, 브로커들의 단기적 이윤 추구, 그리고 성공적 투자 경험담들이 실수요와 결합하면 순식간에 불이 붙는다. 맞춤형 규제를 해도 조금만 빈틈이 보이면 또 다른 스토리들이 실수요자들을 유인할 것이다.


불법 투기를 단속하거나 금융 소외계층이 금융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금융접근성이 고위험 투기를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LTV·DTI 같은 건전성 규제는 실수요자에게 피해를 주는 족쇄가 아니라 이들의 재산과 삶을 투기의 바람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최소한의 안전판임을 상기하고 이를 조속히 정상적으로 복구해야 할 것이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부동산 투기#부동산 투기 단속#ltv#dti

기사 의견

주요뉴스

1/3이전다음

부동산 HOT ISSUE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