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정형근]큰 숙제 떠안은 사법시험 폐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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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근 경희대 로스쿨 원장
정형근 경희대 로스쿨 원장
사법시험을 생각하면 희망, 도전, 좌절, 성취 등 회한과 감동이 떠오른다. 사시는 선거를 통하지 않고 최고의 공직에 오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현대판 과거제도였다. 그 때문에 유능한 청년들은 출세의 꿈을 안고 고시 공부에 뛰어들었다. 독학으로 도전한 입지전적인 인물들에게도 사시는 인생 역전의 발판이 되어주었다. 그 결과 사시 합격자가 대통령이 되고, 민주화와 인권 옹호를 위하여 헌신한 수많은 발자취를 남기게 되었다.

특히 사법시험은 어려움에 처한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고 도전하는 삶을 살도록 했다.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사시에 합격하면 법조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큰 행운이었다. 집이 어려워 고교 진학을 못한 중졸 상태에서 사시 준비를 시작했다. 사시 합격의 환상은 무모한 도전에 나설 용기를 주었다. 현실을 인식하고 22세에 검찰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여 검찰청에 근무하게 된 후에도 사시를 준비했다. 그 당시 이런 다짐의 글로 합격을 기원했다. ‘오늘의 이 일보가 내일의 백보가 될지니, 내 이제 심기일전, 필승의 신념을 사생의 맹서로 삼아 촌음을 아끼리라.’ 그런데 서울지검 근무 시절에 사시 응시 자격을 법대 졸업자로 제한하자는 사법시험 공청회 기사를 보게 되었다.

만약 정부에서 공청회 의견대로 사시 응시 자격을 제한한다면, 최종 학력이 중졸인 나는 응시도 못할 형편이었다. 보잘것없는 학력으로 사시 합격을 바라고 있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래서 대학을 가기로 했다. 곧바로 고졸 검정고시 준비를 하여 6개월 만에 합격하여 26세에 비로소 고졸자가 되었다. 28세에 꿈에 그리던 법과대학에 입학했다. 대학생이 된 것은 사법시험이 나에게 준 선물이었다. ‘법대 재학 중 절대 합격’을 다짐하며 공부를 했다.

그해 가을 산동네 셋방에 살았던 어머니와 형님은 연탄가스 중독으로 돌아가셨다. 청운의 꿈을 좇아 대학에 온 지 1년도 안 되어 혈육과의 사별을 겪어야 했다. 외로움과 실패의 고통을 진하게 겪으며 36세에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에서의 실무와 이론에 정통한 교원들로 구성된 실무교육은 법조인의 기본 자질 함양에 큰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변호사 개업 후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로스쿨 출범을 앞두고 대학으로 옮겨와 교수가 된 지 10년을 맞이하고 있다. 지금은 로스쿨 원장이 되어 예비법조인들을 교육하고 있다.

금년에 내 젊은 날의 생존의 의미였고, 눈물과 기쁨의 대상이었던 사법시험이 폐지된다. 이제 법조인이 되려면 로스쿨을 졸업해야 하는 학력 제한이 생겼다. 이로 인하여 법조인의 진입장벽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사법시험은 이런 제한이 없어 기회균등과 공정성이 인정되었다. 그렇지만 합격의 기쁨을 누린 자는 극소수다. 언제 수험생 신분에서 벗어날지 알 수가 없어, 어떤 분은 ‘형극의 길’이라고 표현했다. 반면, 변호사시험에 응시하려면 로스쿨 졸업 요건을 충족해야 하지만, 응시자의 50% 이상이 합격을 한다. 경쟁률이 2 대 1인 시험이다. 로스쿨은 법률 전문직다운 전문성을 갖출 수 있는 이론과 실무 교육 수준을 유지해야 하고, 입시와 학사 관리를 엄정하게 해야 하는 무거운 과제가 있다. 사시 응시 자격을 제한한다는 소식에 대학으로 향하였던 과거의 나처럼, 로스쿨에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새로운 법조인 양성 제도에서도 대학에 입학하지 못한 자 역시 법조인이 될 수 있는 길을 고민하고 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법시험이 폐지되더라도 어렵고 힘든 청년들의 꿈까지 사라지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정형근 경희대 로스쿨 원장
#사법시험 폐지#법조인 양성 제도#로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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