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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이승헌]전직 대통령이 수행한 마지막 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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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이승헌]전직 대통령이 수행한 마지막 임무

이승헌 정치부장 입력 2018-12-08 03:00수정 2018-12-0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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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헌 정치부장
이 정도면 원수지간이라고 보는 게 정상이다.

재선을 노린 ‘아버지’는 얼굴에 홍조가 가시지도 않은 애송이에게 졌다.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라고 공격당했다. 자리에서 물러나자 4년간 이룬 많은 걸 부정당했다. 이에 아버지의 맏아들이 그 애송이가 키운 후계자를 물리치고 8년 만에 백악관 주인 자리를 되찾았다.

그러나 아버지와 애송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친구처럼, 종종 부자(父子)처럼 지냈다. 3, 4시간의 비행도 마다않고 종종 찾아 아버지와 대화하고 골프도 쳤다. 아버지의 아들도 전직이 되자 애송이와 형제 같은 친구가 됐다.

20년간 순서대로 미국을 집권했던 아버지 부시(조지 H W 부시),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이야기다. 노선도, 출신도 다른 이들이 어떻게 잘 지낼 수 있었을까. 아버지 부시가 먼저 손을 내밀었고 후임자가 이를 잡았기 때문이다. 퇴임하면서 클린턴에게 건넨 편지가 시작이었다. “빌에게…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할 만한 비판 때문에 매우 힘든 시간을 보내겠지만 낙담하거나 경로를 이탈하지 마라. 당신의 성공은 미국의 성공이다… 조지.” 클린턴은 “우리는 모든 것에 동의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견엔 정당한 이유가 있었고 서로 인정했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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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현지 시간) 미 워싱턴 국립대성당에서의 장례식으로 마무리된 아버지 부시에 대한 미국 사회의 추모 열기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전직 대통령으로서 보여준 흔치않은 초당파적 품격도 크게 작용했다고 기자는 본다. 장례 기간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였던 밥 돌 전 상원의원의 ‘마지막 경례’ 때 그의 뒤에는 백인뿐만 아니라 흑인, 아시아계, 히스패닉 등 다양한 인종의 일반 조문객들이 꽃을 들고 있었다.

미국이라고 전직이 다 존경받았겠나. 전직이 할 수 있는 일을 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지난해 10월 아버지 부시는 생존해 있는 미 전직 대통령을 대표해 텍사스, 플로리다를 강타한 허리케인 피해 주민들을 돕기 위한 자선 콘서트를 주도했다. 그는 “항상 우리 전직 대통령들이 곁에 있음을 명심하라”며 피해자들을 위로했다. 폐렴으로 병원 신세를 진 지 얼마 안 된 후였다. 5일 장례식을 집전한 러셀 레븐슨 신부가 “대통령 각하, 임무는 완료됐습니다”라고 한 것엔 국민 통합이란 마지막 임무를 잘 수행했다는 평가도 담겨 있을 것이다.

아버지 부시의 마지막 길을 전하는 미 언론 보도를 접하면서 너무나 대조적인 우리 전직 대통령들의 모습이 어쩔 수 없이 오버랩됐다. 한미의 역사적 차이를 무시한 채 수평 비교할 수 없겠지만, 우리 전직 대통령들이 재판받는 장면은 이제 일상의 풍경이 된 지 오래다.

한술 더 떠 요새 정치권은 재판을 받고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20년 총선을 앞두고 내년 정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판알 튕기기에 바쁘다. 자유한국당에선 비박계가 박 전 대통령의 불구속 재판 결의안을 추진하자 또다시 진박 싸움이다. 친박계는 원내대표 선거를 앞두고 친박 표를 얻으려고 비박계가 쇼를 한다고 비난한다. 비박계는 “보수 통합을 위한 것”이라지만 친박계의 주장을 뒤엎기엔 논리가 군색한 건 어쩔 수 없다. 여권에선 박근혜 효과로 한국당이 분열할지, 그래서 적폐청산 드라이브를 계속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정치권에 전직 대통령의 초당파적 품격이나 역할 정립을 기대하는 건, 아직은 사치인 듯싶다.
 
이승헌 정치부장 ddr@donga.com
#아버지 부시#조지 부시#빌 클린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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