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용]‘메이드 인 코리아’의 북극성은 있을까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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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 뉴욕 특파원
박용 뉴욕 특파원
미국 뉴욕 브루클린육군터미널(BAT) 부두는 60년 전 입대한 록스타 엘비스 프레슬리가 주독일 미군기지 군복무를 위해 군함에 몸을 실었던 곳이다. 요즘 이 부두엔 맨해튼을 오가는 페리가 있다. 브루클린 제조업 회사에서 일하는 직장인, 사업가들이 이 페리를 애용한다. 100년 전 제1차 세계대전을 치르기 위해 건설된 BAT는 2015년 도심 재생 사업을 통해 제조업 창업기지로 부활했다. 도심에 저렴한 임대료의 제조업 창업허브를 확대하려는 뉴욕시의 ‘메이드 인 뉴욕(Made in New York)’ 프로젝트 일환이다.

BAT엔 제조업종 107개 회사가 입주했고 4000여 명이 일한다. 한국에선 창업보다는 안정적인 공무원을 선호하지만 여기선 거꾸로다. 이곳에서 만난 한 20대는 뉴욕시 공무원을 포기하고 제조업 창업에 도전해 ‘사장님의 꿈’을 키워 가고 있었다.

3년 전 이곳에 입주한 뉴욕 유일의 안경 제조회사인 로어케이스 공동 창업자 브라이언 벨라리오 씨는 “사업이 잘되고 있다. 요즘 사람들은 (저렴한 가격보다) 누가 어디서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더 신경 쓴다”고 말했다. 품질과 디자인, ‘뉴욕’이라는 브랜드 가치가 더해진 ‘메이드 인 뉴욕’ 안경은 스웨덴 일본 등으로 비싼 값에 팔려 나간다.

뉴욕의 제조업 전사들은 과거와 같은 방식으론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도 잘 안다. 1970, 80년대 스웨터 생산지로 이름을 날렸던 브루클린에 다시 스웨터 공장을 차린 테일러드인더스트리 공동 창업자 알렉산더 촙 씨(26)는 “웹사이트, 3D 재봉틀, 소프트웨어로 자동화된 주문 생산을 하는 것이 핵심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웹사이트로 주문을 받아 맞춤형 스웨터를 원하는 만큼 바로 생산하는 ‘소량 맞춤형 자동 주문 생산’ 방식을 도입했다. 유행에 뒤떨어지지 않는 데다 ‘메이드 인 브루클린’ 상표가 붙어 일반 스웨터의 갑절 값에 팔린다.

금융 엔터테인먼트 관광 등 세계 최고 서비스업 경쟁력을 보유한 뉴욕이 사양산업인 제조업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따로 있다. 첫째, 정보기술(IT) 로봇 인공지능(AI) 등의 첨단기술을 이용한 ‘제조업의 서비스화’로 도심의 작은 공간에서 고부가가치 물건을 생산하는 ‘도시 제조업’이 가능해졌다. 둘째, 중산층 일자리 창출에 제조업이 꼭 필요하다는 인식이다. 브라이언 콜먼 그린포인트매뉴팩처링디자인센터 사장은 “제조업 일자리는 학력 등의 진입장벽이 낮지만 성장 가능성은 크다”고 말했다. 뉴욕 제조업 평균 연봉은 5만1934달러(약 5897만 원)로 헬스케어 및 사회복지(4만8175달러), 음식류 및 숙박업(3만6547달러), 소매업(2만9767달러)보다 높다.

미국에선 제조업 일자리 앞에 여야가 따로 없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감세, 수입품 관세 정책으로 제조업 부활을 외치고 있다.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는 ‘리쇼어링’(해외 진출 기업의 미국 복귀) 정책을 추진했다. 최저임금 인상, 대학 등록금 인하 등 진보정책을 펼치는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지사도 “‘내일’의 산업에 ‘오늘’ 투자하지 않는 경제는 ‘어제’의 덫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가 우리 항로를 안내하는 ‘북극성’”이라고 말했다.

한국 제조업 가동률은 72.8%로 외환위기 이후 가장 낮다고 한다. 조선 자동차 등 주력 제조업이 크게 흔들리고 서비스업은 진입 규제의 늪에 빠졌다. 일자리가 나올 구멍이 콱 막혀 있는데 소득주도성장이 잘될 리 없다. ‘혁신성장’도 제조업 부활 없인 힘들다.

‘메이드 인 코리아’의 미래를 안내할 북극성은 도대체 어디서 반짝이고 있는 걸까. 새 경제 사령탑이 가장 먼저 답해야 할 질문이다.
 
박용 뉴욕 특파원 parky@donga.com
#제조업#일자리#소득주도성장#혁신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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