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신치영]피할 수 없는 불편한 진실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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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치영 경제부장
신치영 경제부장
“개혁의 성과는 긴 시간이 흐른 뒤에야 나타난다. 개혁안은 구체화될수록 저항이 커진다. 지도자는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선거에 지더라도 개혁을 해야 한다.”(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

국민연금 개편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면서 독일의 연금 개혁을 성공시킨 슈뢰더 전 총리의 리더십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1998년부터 2005년까지 총리로 재직한 그는 통일의 후유증으로 높은 실업률과 마이너스 성장률에 신음하던 독일이 거듭나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개혁이 불가피하다고 믿었다. 그가 마련한 개혁안 ‘어젠다 2010’의 핵심 중 하나가 연금 수령 나이를 65세에서 67세로 늦추는 연금 개혁이었다. 그가 속해 있던 사민당의 핵심 지지층인 노조와 연금 수령자들의 저항이 들불처럼 번졌다. 하지만 그는 “연금 개혁 없이는 독일의 미래도 없다”며 개혁안을 관철시켰다.

정치적 대가는 혹독했다. 슈뢰더는 선거에서 졌고 사민당은 분당 사태를 맞았다. 하지만 지금의 독일인들은 그를 독일을 ‘유럽의 병자’에서 유럽의 최대 강국으로 탈바꿈시킨 지도자로 기억하고 있다. 슈뢰더로부터 정권을 넘겨받은 기민당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2005년 총리 취임 후 첫 의회 연설에서 “어젠다 2010으로 새 시대의 문을 열게 해준 슈뢰더 전 총리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국민연금 재정 예산을 위해 구성된 자문위원회인 국민연금재정추계위원회가 17일 국민연금 개혁안을 공개했다. 국민연금이 바닥을 드러내는 고갈 시점이 5년 전 예상된 2060년에서 2057년으로 3년 앞당겨졌고 가입자들이 보험료를 더 많이, 더 오래 낼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제시됐다.

앞으로 정부와 국회가 본격적인 논의를 진행할수록 국민연금 개편을 둘러싼 논란은 더욱 뜨거워질 것이다. 이를 의식한 듯 정부는 이날 공개된 개편안이 민간 전문가들의 자문안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지난주 국민연금 개편안 일부가 언론을 통해 흘러나온 뒤 반발 여론이 빗발치자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의 동의와 사회적 합의 없는 정부의 일방적인 국민연금 개편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의 국민연금 제도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데 이의를 다는 민간 전문가는 별로 없다. 국민연금은 일하는 동안 돈을 내고 노후에 연금을 받는 제도다. 세계적으로 가장 심각한 저출산 고령화 문제를 안고 있는 우리나라는 일하는 사람(생산가능인구)은 빠르게 줄고 있고 고령층은 급증하고 있다. 퇴직자 한 사람을 부양하는 생산가능인구 수는 2015년 5.1명이었다. 2050년이 되면 1.4명으로 줄어든다.

국민연금을 현재 수준으로 내면서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마법’은 없다. 불편하지만 피할 수 없는 진실이다. 정부는 국민연금의 파탄을 막고 미래 세대에게 보험료 폭탄을 안기지 않으려면 지금 세대가 더 내고 덜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국민에게 솔직하게 설명하고 설득해야 한다.

찬반양론이 팽팽하지만 탈원전도, 복지 지출도 ‘마법’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원전 대신 액화천연가스(LNG)나 석탄으로 전기를 생산하려면 비싼 비용만큼 전기요금을 올리는 수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다. 원전도 덜 돌리고 전기요금도 안 올릴 수 있다는 현실성 없는 말보다는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를 쓰는 대신 조금씩 비용 분담을 해달라고 국민을 설득하는 편이 낫다. 증세를 하지 않고 복지 지출을 늘리며 적자 예산을 편성하는 것도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건 웬만한 국민은 다 안다.

국가의 미래를 위해 정말 필요한 정책이라면 불편한 진실에 눈을 감기보다는 국민에게 솔직하게 고백하고 동의를 구하는 게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신치영 경제부장 higgledy@donga.com
#국민연금 개편#국민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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