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서영아]조선 출신 일본인 도공의 ‘이상향’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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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아 도쿄 특파원
서영아 도쿄 특파원
18일자 심수관 14대의 인터뷰 기사가 나간 뒤 많은 이메일을 받았다. 그중 10여 분은 심 옹의 한국 방문을 본인이 직접 안내하고 싶다며 자기소개와 연락처를 보내주셨다.

심 옹은 이 소식에 감사해했다. 대신해 설명하자면 만 90세를 넘긴 심 옹이 방한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선 몸이 불편해서다. 하지만 더 깊은 이유는 1995년 한국의 78세 지인이 가고시마 방문 중에 갑자기 세상을 뜬 기억과 관련이 있다. 당시 뒷일을 도맡아 고생도 했지만 타향에서 불의의 일을 당한 지인의 황망함을 생각하면 기가 막혔다. 그래서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사람은 멀리 움직이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독자 중에는 심 옹의 실상이 알려진 것과 다르다는 지적을 해 온 분도 있었다. 6시간 정도 대화하면서 기자도 느끼는 바가 없지 않았다. 그간 매체들이 다뤄 온 것 같은 ‘민족애로만 가득 찬 도공의 후예’는 어차피 미화된 얘기일 수밖에 없다.

그는 일본인이고, ‘오사코(大迫)’라는 일본 이름을 갖고 있다. 1999년 세상을 뜬 부인도 일본인이다. 다만 그는 한 번도 이를 감추려 하지 않았다. 그는 인터뷰 중에도 “난 일본인인데 한국분들은 내가 뼛속까지 한국인이라고 전제하고 말을 하곤 해 당혹스러울 때가 많다”며 이 또한 유머로 넘긴다. “난 실은 고(古)조선인인데….”

그런데 그가 일본인이라 해도, 조선에서 끌려온 심씨 일가가 일본에 정착해 ‘친주칸(沈壽官)’이라는 조선 이름으로 된 브랜드를 키워 나간 얘기는 감동적이지 않은가. 특히 이런 일이 왜 일본에서는 가능했고 한국에서는 불가능했는지를 곰곰 돌아본다면 말이다.

검색을 하다 보니 그가 일본에서도 ‘배싱’의 대상이란 점을 알게 됐다. ‘심수관은 그의 본명이 아니라’거나, 그를 주인공으로 한 시바 료타로의 소설 ‘고향을 어찌 잊으리’도 공격 대상이 됐다. 소설에는 그가 중학교 입학 직후 ‘심’이란 진기한 이름을 발견한 상급생들로부터 흠씬 두들겨 맞았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에 대해 “그 학교 동창회 명부에 ‘심수관’은 없었다”고 고증하며 비판하는 식이다. 소설이란 점을 잊은 지적이겠지만 시바 료타로가 ‘심’이란 이름 때문에 맞은 것으로 쓰고 있기는 하다. 다만 그 좁은 지역에서 조선식 이름이 아니었으면 조선인 출신이란 걸 몰랐을까?

지면에는 다 쓰지 못했지만 14대 심수관에게, 혹은 그의 선조들에게 고향이란 일종의 잃어버린 이상향 같은 존재였다는 게 솔직한 감상이다. 그들은 삶이 고되고 힘들 때, “우린 훨씬 훌륭한 핏줄을 가졌어” “우리 한강은 세상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강이야”라고 자식들에게 가르치며 이를 악물었을 것이다. 그들의 이상향인 조선이 지금의 한국을 의미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한국분들 참 따뜻합니다. 400년 전 끌려간 도공의 후예라고 하면 노동으로 거친 손을 한 촌로가 고생 많았다며, 불쌍하다며 안아 주세요. 암만 봐도 내가 더 잘살고 고생도 덜한 것 같은데…. 그런데 그게 참 좋았습니다.”

결국 깎아내릴 필요도, 우러러볼 필요도 없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는 어떻게든 조그만 흠집을 찾아내고 공격해 모든 것을 가치 없는 것으로 바꿔 버리는 질병이 만연하고 있는 건 아닐까. 누구나 잘한 것도, 잘못도 있다. 잘못은 고치되 잘한 것을 키우고 남겨야 무언가가 축적된다. 문화에도, 역사에도 자랑할 만한 자산이 생겨나는 것이다.

서영아 도쿄 특파원 sya@donga.com
#심수관#시바 료타로#고향을 어찌 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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