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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박용]메이 머스크의 런웨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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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박용]메이 머스크의 런웨이처럼

박용 뉴욕특파원 입력 2017-09-12 03:00수정 2017-09-12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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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 뉴욕특파원
9월 미국 뉴욕 도심은 촬영장으로 바뀐다. 뉴욕 패션위크에 참가하는 톡톡 튀는 모델들과 이들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사진기자 및 블로거들의 취재 경쟁이 거리 곳곳에서 눈에 띈다. 8일(현지 시간)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KOCCA) 주최로 한국 디자이너들을 소개하는 ‘콘셉트 코리아’ 패션쇼가 열린 맨해튼 서쪽 스카이라이트 클라크슨스퀘어 주변 거리가 특히 그랬다.

쿵쾅거리는 빠른 비트의 리듬과 함께 콘셉트 코리아 패션쇼가 시작되자 은발의 노모델이 손주뻘의 젊은 모델들을 이끌고 런웨이로 걸어 나왔다.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캣워크를 딛는 그의 걸음은 젊은 모델처럼 힘이 있진 않았으나, 기품 있고 당당했다. 미국 전기자동차 테슬라 창업주인 억만장자 일론 머스크의 어머니이자 현역 최고령 모델 메이 머스크(69)였다.

뉴욕은 프랑스 파리, 영국 런던, 이탈리아 밀라노와 함께 세계 4대 패션 거점도시로 꼽힌다. 상업적 성격이 강해 한 브랜드의 쇼케이스가 15분을 넘기지 않는다. 짧은 시간에 모든 것을 보여주지 못하면 허사가 되니, 모델도 아무나 쓰지 않는다. 머스크는 그런 깐깐한 시장에서 50년 넘게 버텼다. 일에 대한 열정과 숨은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라는 게 패션업계의 평가다. 그는 최근 젊은 모델도 눈에 들기 어려운 세계 최고의 모델 에이전시인 IMG와 계약까지 했다.

쇼가 끝나고 백스테이지에서 만난 머스크는 소녀처럼 상기돼 있었다. 이날 소개한 한국 패션 브랜드 그리디어스(GREEDILOUS)의 박윤희, 라이(LIE)의 이청청 디자이너의 어깨를 감싸 안으면서 “젊은 디자이너들과 함께할 수 있어 특별했다”며 즐거워했다. 또 “젊은 디자이너들이 불러준다면 계속 무대에 서겠다”며 웃었다.

하지만 장남 일론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곧바로 “노(No) 일론”이라며 손을 내저었다. 워킹맘이자 싱글맘으로 갖은 고생을 하며 세계적 기업인을 키워냈는데, 할 말이 왜 없을까. 아들의 명성이 도움이 될 텐데도 그는 “패션에 대해 물어 달라. 더구나 지금은 뉴욕 패션위크 아닌가”라며 입을 다물었다. 백발의 노모델은 패션쇼는 물론 인생의 런웨이에서도 끝까지 주인공이었다. ‘누구 엄마’보다 ‘모델 메이’로 봐 달라는 주문처럼 들렸다.

억만장자 아들을 두고도 런웨이를 누비는 은발 모델 얘기나 ‘아들보다 날 봐 달라’는 엄마의 주문. ‘엄마 친구 아들’ 얘기가 신화처럼 돌고 ‘공부 잘하는 아들은 나라의 아들, 돈 잘 버는 아들은 장모의 아들, 신용불량자 아들은 내 아들’이라고 한탄하는 드라마 대사까지 등장하는 한국의 현실과는 꽤 거리가 있다.

한국에는 자식의 성공에 다걸기를 하고 ‘누구의 엄마’로 살아가는 여성이 많다. 자식들도 부모에게 물려받는 걸 너무 당연하게 여긴다. 지난해 한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은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는 2014년 12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라는 글을 올려 촛불 민심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자식만은 번듯하게 잘 키워야 한다는 ‘가시고기 엄마들’의 헌신 덕분에 한국이 이만큼 먹고사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식에게 모든 것을 바친 엄마의 노년은 초라해지기 쉽다. 자식 공부시키고, 결혼시키고, 집 얻어주느라 현금성 자산은 남아나지 않는다. 미국 중장년층의 금융자산 비중이 한국보다 훨씬 높은 건 부동산 수익률 차이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의 ‘누구 엄마들’에게도 한때 자신만의 행복한 런웨이가 있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런웨이를 돌려준다면 노년에도 은발의 메이 머스크처럼 당당해지지 않을까.

박용 뉴욕특파원 parky@donga.com
#뉴욕 패션위크#코리아 패션쇼#메이 머스크#테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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