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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이승헌]버락 오바마를 원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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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이승헌]버락 오바마를 원망한다

이승헌 정치부 차장 입력 2017-09-11 03:00수정 2017-09-11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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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헌 정치부 차장
정말 그럴 줄은 몰랐다.

김정은의 4차 핵실험 일주일 후인 지난해 1월 13일 오후 9시. 세계인의 시선은 미국 워싱턴 의회에 쏠렸다.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이 임기 중 마지막 연두교서를 통해 국정 방침을 밝히는 날이었다. 우리로선 김정은의 핵개발을 어떻게 멈출지가 관심사였다. 우리 정부는 연두교서 당일까지 오바마 원고에 대북제재가 들어가야 한다고 백악관을 설득했다. 하지만 오바마는 북한의 ‘북’자도 언급하지 않았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오바마 쪽과 가까운 데이비드 스트라우브 전 국무부 한국과장(현 세종연구소 산하 세종-LS 펠로)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바마는 북핵에 관심이 없나?

“연두교서는 미국 이슈가 최우선이야.”

―오바마의 대북 정책, 전략적 인내의 실체는 뭔가?

“요즘 백악관에서 전략적 인내라는 표현을 거의 안 써. 대책 없이 인내만 한다는 오해를 줄 수 있어서….”


우선순위도 아니고 정책의 이름과 콘셉트도 불분명하니 제대로 집행했을 리 만무했다. 돌이켜보면 김정은은 오바마 임기 8년 동안 대부분의 핵능력을 완성했다. 북한은 여섯 번의 핵실험 중 오바마 시절에만 네 차례(2∼5차) 했다. 오바마는 미국에선 이미 전설이다. 도널드 트럼프와 비교되는 특유의 감성 소통 능력은 지금 봐도 소름 돋는다. 그런 오바마는 왜 유독 북핵에선 실패하고 ‘린치핀(linchpin·핵심 축)’이라던 한미동맹에 이런 부담을 물려줬을까. 기자는 오바마 스스로 드리운 ‘오바마의 덫’이 결정타였다고 본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자 인권변호사 출신인 오바마는 외교안보 이슈에서도 진보적 가치를 앞세웠다. 전임 조지 W 부시가 일으킨 이라크전쟁, 아프가니스탄전쟁을 끝내겠다고 했다. “No boots on the ground(전투화 한 켤레도 땅에 닿지 않게 하겠다).” 오바마가 중동에 지상군을 더 이상 투입하지 않겠다며 내세웠던 표현이다. 부시의 전쟁놀이에 지친 미국인들은 열광했다.

2014년 5월 오바마는 아예 ‘제한적 개입주의’라는 외교 독트린을 발표했다. “꼭 필요한 경우에만 군사력을 동원하겠다. 좋은 망치를 들었다고 모든 못을 박아야 하느냐”는 것이다. 노벨 평화상(2009년) 수상자다운 노선이었다. 김정은이 쾌재를 불렀을 순간이다. 여기에 이슬람국가(IS)가 등장하자 북핵은 점차 후순위로 밀린다.

그런 오바마가 김정은 핵능력이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며 본격 대응에 나선 것은 5차 핵실험 직전인 지난해 여름 정도다. 부랴부랴 김정은을 미국 독자제재 대상으로 삼고 세컨더리 보이콧을 운운했지만 ‘허공에 총질하기’ 수준의 부질없는 대책이었다.

오바마의 북핵 실패를 되돌아보는 것은 그의 낭만적 세계관, 대북 낙관주의가 정치 성향이 비슷한 문재인 대통령과 오버랩되기 때문이다. 어느 정권보다 북핵을 최우선 문제로 다루고 있지만 동시에 곳곳에서 오바마의 ‘북핵 환상’ 그림자가 엿보인다. 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석론’은 김정은의 속내는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대화론자’라며 밀어붙인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와 닮아 있다. ‘한반도에서 전쟁은 안 된다’는 문 대통령의 외침은 제한적 개입주의의 한국 버전 같기도 하다.

동시에 안도하는 것은 문 대통령이 오바마보단 빨리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듯해서다. 한미 미사일지침 개정, 사드 배치 결정이 잇따르고 있다. 노무현을 이어받은 진보 대통령으로서, 남북 간 대화 모멘텀을 만들려 했던 그로선 요즘 아쉬운 순간의 연속일 것이다. 그래도 그의 각성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진보 대통령의 북핵 정책 실패는 오바마 한 명으로 족하다.
 
이승헌 정치부 차장 ddr@donga.com
#김정은의 4차 핵실험#버락 오바마의 대북 정책#한미동맹#오바마의 북핵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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