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황재성]원전, 영월과 부산 어디로 갈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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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재성 경제부장
황재성 경제부장
현 정부가 추진 중인 ‘원전(원자력발전소) 제로 정책’을 놓고 펼쳐지는 찬반 공방전을 지켜보면서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현장기자 경험이 떠올랐다. 각종 대형 국책사업마다 찬반양론과 갈등이 빚어졌지만 두 정권을 거치면서 환경단체의 목소리는 커질 대로 커졌다. 그 중심에 영월댐과 경부고속철도가 있었다.

영월댐은 1990년 9월 폭우로 강원 영월군과 충북 단양군 일대에서 대규모 침수 피해가 발생하면서 건설작업이 본격화됐다. 정부는 이듬해인 1991년 댐 건설을 결정한 뒤 1997년 9월 댐 건설 예정지를 확정했다. 영월댐은 저수용량만 7억 t이 넘는 초대형 댐이었다.

이후 댐 건설을 책임진 건설교통부와 이를 저지하려는 환경단체들의 치열한 공방전이 펼쳐졌고 1998년 2월 출범한 김대중 정부 초기 영월댐은 뜨거운 감자가 됐다. 지루한 논쟁이 이어지던 1999년 8월 6일 김대중 대통령은 방송 인터뷰에서 “개인 의견으로는 건설하지 않을 수 있다면 안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라고 선언한다. 이후 무게 추는 급격히 반대쪽으로 기울었고, 정부 주도 아래 ‘영월댐 타당성 공동조사단’이 꾸려진다. 조사단의 현장조사 결과 이전 정부에서 추진했던 환경영향평가 등이 부실하게 이뤄진 사실이 드러났고, 댐 건설은 백지화됐다.


이후 국내에서 영월댐 수준의 헤비급 댐 건설은 자취를 감췄다. 한국수자원공사에 따르면 영월댐 취소(2000년 6월 13일) 이후 새로 건설됐거나 건설 중인 다목적댐(5개)은 모두 저수용량이 2억 t을 넘지 않는다. 그나마 영주댐이 1억8100만 t이고, 나머지는 2000만∼5400만 t 규모의 플라이급이다.

경부고속철도는 찬성과 반대 측의 공방전이 영월댐보다 훨씬 치열하고 집요하게 펼쳐져 전쟁을 방불케 했다. 1992년 착공까지 했지만 부실시공 논란과 불투명한 사업 절차 등이 문제가 되면서 사업 진행은 더뎠다. 이에 김대중 정부 초기 학계 출신의 청와대 멤버들을 중심으로 경부고속철도 백지화 방안이 거론됐다. 주무부처인 건설교통부의 강력 반발에 백지화 논의는 없던 일이 됐지만 불씨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양측은 금정산∼천성산 터널 공사에서 정면충돌했다. 2003년 3월 7일 노무현 대통령이 “백지화를 포함한 노선 재검토와 공사 중단”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이후 반대 단체들은 “공사로 인해 습지가 훼손되고, 지하수가 유출되면 도롱뇽이 살지 못하는 등 생태계를 해칠 수 있다”며 법원에 ‘도롱뇽’을 앞세운 공사 금지 가처분 신청까지 내며 정부를 압박했다. 하지만 관련 전문가들을 통해 이런 주장들의 허구성이 드러났고, 법원이 정부 손을 들어주면서 공사는 원래 계획대로 마무리됐다.

현재 정부는 2025년까지 고속철도망을 확대해 전국을 2시간 생활권으로 만든다는 계획을 세웠다. 지난해 확정된 3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따르면 정부 뜻대로 될 경우 고속철도 수혜지역은 전 국토의 85%가 된다. 국민 생활에 없어선 안 될 핵심 교통 인프라로 우뚝 서게 되는 것이다.

원전 제로화 정책이 ‘제2의 영월댐’으로 기록될지, 또 다른 경부고속철도의 길을 걷게 될지 지금으로선 알기 어렵다. 분명한 건 원전은 두 사업보다 후대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특히 전기자동차의 등장 등으로 조만간 전기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시점에서 급격한 에너지 정책 전환이 가져올 파급 효과는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이제 관련 전문가들이 ‘원전 마피아’ ‘환경 탈레반’이라는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 국가 미래를 염두에 두고 제대로 심도 있는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 영월댐과 경부고속철도의 희비를 가른 지점에 관련 분야 전문가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다.
 
황재성 경제부장 jsonhng@donga.com
#원전 제로 정책#제2의 영월댐#원전 마피아#환경 탈레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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