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최고야]‘미투’ 농담삼은 여야대표들의 너무 가벼운 입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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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정치권에선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전날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에게 건넨 ‘미투 발언’을 놓고 여진이 계속됐다. 7일 여야 5당 대표가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과의 청와대 오찬 자리에서 임 실장에게 “안희정(전 충남도지사에 대한 미투 폭로)을 임종석이 기획했다고 하던데”라고 말한 게 화근이었다. 논란이 일자 홍 대표는 청와대 오찬 후 기자간담회에서 “농담이었다”고 해명했다.

홍 대표뿐만 아니라 여야 대표들이 이날 무심코 내뱉은 미투 ‘농담’에는 피해자들의 고통을 별로 헤아리지 못하는 한국 정치지도자들의 인식 수준이 드러나 있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남성들이 그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을 걸”이라고 했고, 민주평화당 조배숙 대표는 “지금 발 뻗고 잘 수 있는 것은 여자들이다”라고 했다. 미투 운동의 본질과는 무관한 이분법적 남녀 편 가르기에 다름없다.

추 대표는 자신은 당당하다는 바른미래당 유승민 대표에게 “사모님이 저랑 (경북여고) 동창이니 (당당히 말할 수 없는 남자에서) 빼드리겠다”고 했다. 도대체 미투 운동과 학교 동창이 무슨 상관이 있나. 아는 사이에 서로 쉬쉬해온 우리 누구도 간접적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있었다면 하기 어려운 발언이었다.

안 전 지사 사건 전후로 각 당은 미투 관련 태스크포스(TF)나 각종 특별위원회를 꾸리고 있다. 하지만 이런 대표들이 이끄는 정당들이 피해자의 고통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관련 대책을 만들지 의문이다. 한국당 성폭력근절대책특별위원장인 박순자 의원은 “우리(한국당)에게 있는 불미스러운 일들은 거의 ‘터치(접촉)’나 술자리 합석에서 있었던 거고, 성폭력은 없었다”고 말했다. 미투 관련 특위에서조차 ‘터치는 괜찮고, 안희정의 성폭력은 나쁘다’란 인식을 보여주는 수준이다.

정치권 내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없지는 않다. 한국당의 한 의원은 사석에서 “홍 대표도 그런 농담을 안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했다. 청와대 오찬에 참석했던 정의당 이정미 대표는 8일 “(홍 대표의 임종석 기획설 주장은 미투)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다.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이 대표는 그 자리에선 뭐 했느냐”는 말도 있다.

성폭력 피해자들은 그동안 미투 사례를 폭로하면서 “인생을 걸고 나왔다”고 말했다. 그들은 대부분 떨었고, 두려워했으며, 울먹이면서도 나섰다. 정치권이 미투를 정쟁이나 좌우의 대립 정도로 봐서는 제대로 된 해법을 내놓기 어렵다. 피해자가 삶을 걸고 용기를 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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