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평인]‘미니 메르켈’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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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영국과 달리 여왕이 통치한 전례가 없다. 입헌군주제하에서도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가 통치하고 정치란 법대를 나온 남자들의 전유물로 여기던 나라였다. 그런 독일에서 여성이 국가 수장인 시대가 앙겔라 메르켈에게 국한한 예외적 현상이 아닐 수 있다는 강력한 근거가 등장했다. 메르켈 총리가 맡고 있던 기민당(CDU) 대표에 ‘미니 메르켈’로 불리던 아네그레트 크람프카렌바워가 7일 선출됐다.

▷내각책임제인 독일에서는 당 대표가 그 당의 총리 후보가 되는 것이 관례다. 크람프카렌바워가 당 대표로 선출된 것이 관심을 끄는 이유는 그가 2년 후 기민당 대표 선거에서 재선하고 이듬해 총선에서 이긴다면 메르켈의 후임이 될 것이 분명해서다. 사민당(SPD)에서도 내년 4월 전당대회에서 여성 정치인 안드레아 날레스가 당 대표 자리를 예약해놓은 상태다. 차기 총선에서 CDU가 이기든, SPD가 이기든 다시 여성 총리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독일 정치의 특징은 정치인들이 청소년 시절부터 정당 조직에 몸담고 활동한다는 점이다. 크람프카렌바워는 1981년 고등학교 시절 CDU에 가입한 이래 퓌틀링겐 시당(市黨)과 자를란트 주당(州黨) 조직에서 착실히 정치적 이력을 쌓으며 성장했고 2011년 이래 자를란트주 총리로 선출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여성이 주 총리가 된 것은 그가 세 번째다. 메르켈은 결혼을 2번 했지만 자녀는 없다. 크람프카렌바워는 세 자녀의 어머니다. 그를 두고 보수정당 내에서 가족과 커리어를 결합하는 여성의 이미지를 개척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독일의 남성 우위 정치의식은 끈질겨서 메르켈이 총리가 된 뒤에도 여성 정치인이 정치적으로 성장하려면 남성 멘토를 필요로 한다는 말이 남아 있었다. 메르켈은 헬무트 콜 전 총리의 정치적 양녀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콜 전 총리의 후견 속에서 정치적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크람프카렌바워가 당 대표 자리를 성공적으로 유지하고 차기 총리가 된다면 그런 말도 통하지 않게 될 것이다. ‘여성에서 여성으로의 계승’, 크람프카렌바워 앞에 놓인 새로운 도전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독일#독일 총리#메르켈#크람프카렌바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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