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광현]공정위의 황당한 재취업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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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수사로 밝혀진 공정거래위원회 퇴직자의 민간기업 재취업 행태를 보면 ‘공정’이란 단어가 민망할 정도다. ‘1년 차 연봉 1억9000만 원, 2년 차 2억9000만 원, 3년 차 2억4000만 원, 업무추진비 500만 원’식으로 3년 치 연봉을 스스로 정하거나 골프회원권에 비서, 월 500만 원씩 쓸 수 있는 법인카드, 건강검진까지 요구했다. 출근 안 해도 되는 조건으로 2억 원을 보장받고 고문으로 취업하는가 하면 대기업에 자녀 채용을 요구한 간부도 있다.


▷특이한 점은 취업된 당사자들 누구도 입건조차 되지 않고 조사도 참고인 자격으로 받았다는 사실이다. 공정위가 특정 기업과의 업무 연관성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예비 퇴직자에 대해 ‘경력 세탁’을 해준 덕분에 인사혁신처의 재취업 심사를 교묘하게 통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재취업 대상은 주로 대기업과 유통회사다. 지배구조나 인수합병에서 광고, 소비자문제까지 걸면 걸릴 게 많다는 약점을 이용했다. 기업의 ‘갑질’을 막아야 할 공정위가 기업의 약한 고리를 누구보다 잘 아는 ‘전문성’을 이용해 제대로 갑질을 한 셈이다.

▷공정위 일각에선 “다른 부처와 달리 산하 기관이 없어 어쩔 수 없이 기업에 재취업을 시키게 된 것”이라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어디 산하 기관뿐이겠는가. 민간기업에는 정부 부처가 모두 상전이다. 국세청은 말할 것도 없고, 은행처럼 인허가 규정이 많은 금융회사들에는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제일 무섭다. 건설회사, 항공사에는 국토교통부 공무원들의 말 한마디에 회사 운명이 오락가락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검찰, 경찰 등 힘 있는 기관들은 언제라도 칼을 들이댈 수 있어 재취업은 물론이고 어떤 요청이든 함부로 흘려들을 수가 없는 게 현실이다.

▷현대판 관존민비(官尊民卑)의 특징은 기업을 괴롭힐 수단을 많이 가지고 있는 곳일수록 낙하산 일자리도 많다는 점이다. 그 수단은 늘 법령 같은 규제의 탈을 쓰고 있다. 규제가 공무원의 밥이요, 재취업 수단인 셈이다. 규제혁파가 경제를 살리는 대책이자 공무원과 기업 사이의 악성 먹이사슬을 끊는 획기적 방안이 될 수 있는 이유다.
 
김광현 논설위원 kkh@donga.com
#공정위#공정거래위원회#재취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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