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고미석]돌아본 대한민국 70년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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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래의 폭염이 밀어닥친 7월의 마지막 주말, 도시 농촌 할 것 없이 전국은 온통 용광로처럼 들끓어 올랐다.’ 기록적 폭염이 이어진 올해 여름의 얘기가 아니다. 1977년 8월 1일자 동아일보 기사다.

▷1940∼80년대 날씨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혹한’이었다. ‘동장군’이란 말이 1950년대 주요 키워드로 꼽혔을 정도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무더위를 더 겁내는 상황으로 반전됐다. 신문 지면에서 ‘혹한’보다 ‘폭염’이란 단어의 사용이 늘어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특히 기록적 폭염을 보인 1977년, 1994년, 2012년에 빈도수가 급증했다. 동아일보와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디지털인문학센터가 1946∼2014년 동아일보 기사의 어절, 키워드 등을 빅데이터 분석한 결과에서 드러난 내용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70년을 맞아 발표된 이번 조사는 우리나라의 변화상을 다방면에 걸쳐 생생하게 보여준다. 돌고 도는 패션도 그중 하나다. 한국에서 미니스커트를 대중화시킨 주인공은 가수 윤복희. 1967년과 1968년 그가 짧은 치마 신드롬을 일으키면서 ‘미니스커트’ 단어의 언급도 정점을 찍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에도 ‘미니스커트’의 언급은 대략 5년을 주기로 크게 늘어났다. 미니스커트 유행이 반복적으로 되살아났다는 의미다.

▷외식 트렌드도 시대별 차이가 뚜렷했다. 1960, 70년대 인기 외식 메뉴는 단연 불고기였다. 1980년대를 거치면서 햄버거와 피자가 불고기를 추월했으나 오래 정상을 누리지 못했다. 건강한 식생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인스턴트 음식에 대한 언급이 크게 줄어든 탓이다. 술 문화의 변화도 흥미롭다. 1999년 외환위기 직후 지면에서는 ‘소주’가 빈번하게 언급되더니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는 ‘맥주’가 가장 많이 등장했다. 예전에는 명품이란 단어에 ‘청자’가 연관어로 등장했으나 1990년대 이후 ‘백화점’이 그 자리를 대체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신문을 통해 돌아본 정부 수립 70년, 한국 사회가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떠나왔는지를 새삼 실감하게 된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대한민국 정부 수립 70주년#혹한#미니스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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