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최영해]‘農피아’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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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정부에서 기획예산처 예산실장을 지낸 박봉흠은 노무현 대통령 때 경제기획원(EPB) 후배인 변양균에게 예산처 장관과 대통령정책실장을 물려줬다. 전윤철 감사원장, 노준형 정보통신부 장관, 김성진 해양수산부 장관, 김영주 대통령경제정책수석비서관도 EPB에서 한솥밥을 먹은 식구였다. 반면 금융과 세제를 주무른 ‘모피아’(재무부의 MOF와 마피아의 합성어)들에 대해선 중용은커녕 산하기관에 낙하산으로 가는 것도 제동을 걸었다. 해수부라는 미니 경제부처 장관을 지낸 노 대통령의 눈에 엘리트 경제관료끼리 밀고 끌어주는 모피아는 척결 대상으로 보였던 것 같다.

▷모피아가 공무원 전체인 ‘관피아’(관료+마피아)라는 말로 확산된 것이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직후 관료사회의 적폐에 대한 비난이 들끓던 즈음이었다. 당시 조사해 보니 농림축산식품부 고위 간부로 일하다가 산하 공공기관이나 협회에 취업한 ‘농(農)피아’는 42명으로 산업통상자원부 출신 ‘산피아’ 64명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규제를 칼자루로 삼아 산하기관에 포근한 둥지를 튼 것이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19일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농관원) 출신 퇴직자들의 친환경 인증업체 낙하산 취업 행태를 “전문성이란 미명 아래에서의 유착은 국민건강을 볼모로 삼는 매우 위험한 범죄”라고 비판했다. 정부로부터 친환경 농산물 인증기관으로 지정된 민간회사에 농관원 출신 수십 명이 임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사실을 꼬집은 것이다.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살충제 계란 파동 원인을 굳이 찾자면 식품안전 관리를 철저히 못한 이전 정부에 있다”고 책임을 떠넘겼다.

▷2015년 관피아방지법이 발효되면서 퇴임 고위 공무원들의 산하기관 취업이 대폭 제한됐지만 산하기관 출신의 민간행까지는 막지 못했다. 공무원-산하기관-민간으로 이어지는 규제의 먹이사슬은 모질고 끈질기다. 이번 기회에 농피아도 뿌리 뽑아야겠지만 성과연봉제부터 폐지하겠다는 정부가 얼마나 공공개혁을 밀어붙일지는 지켜볼 일이다. 새 정부 출범 100일이 지났는데 전 정부를 탓하는 것도 곱게 비치지는 않는다.

최영해 논설위원 yhchoi65@donga.com
#이낙연#국무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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