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진]파출소 위 임대주택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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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수도 빈에 들르는 관광객들이 예외 없이 찾는 명소가 있다. 방금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훈데르트바서 하우스다. 면적 1543m²(약 467평) 위에 세워진 건물의 색깔은 알록달록, 외벽은 구불구불, 하다못해 보도(步道)까지 물결치듯 울렁울렁하다. 건축에 예술을 덧입힌 설치미술 작품이라고 해도 손색없을 이곳은 52가구가 입주한 시영(市營) 임대아파트다. 1983년 재건축에 들어가 1986년 현재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

▷훈데르트바서 하우스를 디자인한 건축가는 2000년 타계한 프리덴스라이히 훈데르트바서다. 제2차 세계대전 패배로 피폐해진 빈에서 서민들의 주택난을 해결하기 위해 급히 지은 시영 임대아파트들은 복도 사이로 좁은 방이 늘어선 감방 같은 곳이었다. 빈 한복판, 흉물 같은 임대아파트 재건축 프로젝트에 나선 시는 디자인 공모를 통해 훈데르트바서를 택했고, 입주 신청자가 3만 명이나 몰릴 만큼 대성공을 거뒀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그제 ‘셰어하우스형(공유주택) 임대주택’ 5만 채를 2022년까지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낡은 주민센터나 파출소를 재건축할 때 층수를 올려 ‘고공(高空) 임대주택’을 짓겠다는 것이다. 전임 정부는 공공이 보유한 철도 부지나 유수지 위에 행복주택 14만 채를 짓겠다고 했다. 대학생에게 주로 임대한 서울 가좌지구와 신혼부부 임대분이 많은 오류지구가 대표적인 ‘기찻길 옆 행복주택’이다. 모두 도심에 임대주택 지을 터를 확보하기 위한 발상이었다.

▷요즘은 ‘지하에서 반지하 옥탑방을 거쳐 마침내 내 집’의 공식을 실현하기도 쉽지 않다. 인턴생활이나 학원에 다니기 위해 2, 3개월간 셋방을 비워야 하는 대학생들이 다시 세를 놓는 전대(轉貸)가 꽤 많은 것도 주거비를 아끼려는 몸부림이다. 이왕 지으려거든 주민센터나 파출소도 명품처럼 재건축하면 좋겠다. 역량 있는 설계사들이 참여하도록 공모전을 하는 것도 방법이다. 훈데르트바서는 빈 시민들을 위해 무보수로 임대아파트 재건축을 맡았다고 한다.
 
이진 논설위원 leej@donga.com
#훈데르트바서 하우스#셰어하우스형 임대주택#김현미#고공 임대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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