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평인]부탄식 행복지수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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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당시 부탄 국왕 지그메 싱기에 왕추크는 “국민총행복(GNH)이 국민총생산(GNP)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현자 국왕의 말에 그 뒤 부탄의 국가 정책은 지속 가능한 개발, 문화의 보존과 진흥, 환경 보호, 좋은 통치 등 네 가지 기준에 초점을 맞췄다. 2008년 네 가지 분야에서 얼마나 진전이 있었는지 측정하기 위해 GNH 지수를 개발했다. 2015년 부탄 정부가 국민 7000여 명을 상대로 GNH 지수를 조사했을 때 91.2%가 행복하다고 답했다. 1인당 국민소득은 3000달러도 안 되고, 화장실도 없어 아무 데서나 변을 보는 나라지만 그렇게 행복할 수 있다니 부럽다.

▷매년 3월 20일은 유엔이 정한 ‘국제 행복의 날’이다. 유엔 산하기구인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가 올해 ‘국제 행복의 날’에 발표한 국가별 행복지수에서 한국은 56위를 차지했다. 헬조선까지는 아니더라도 행복한 나라는 아니다. 유엔행복지수 최상위권은 노르웨이 덴마크 아이슬란드 핀란드 같은 북유럽 국가들이 차지하고 있다. 부탄은 97위다. 지난해 84위보다 13계단 떨어졌고 해마다 떨어지고 있다.

▷부탄의 GNH 지수에서는 심리적 행복감이 중요하다. 유엔행복지수도 경제력으로만 국가를 비교하는 데 대한 반성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개개인의 응답보다는 행복감을 측정할 수 있는 객관적 지표를 중시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여전히 행복의 토대다. 다만 이것으로는 모자라 복지 지원, 기대수명 같은 사회적 지표와 자유, 관용 같은 정치적 지표를 더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부탄을 참조한 한국식 행복지수 개발을 주문했다고 한다. 지난해 히말라야 트레킹에서 부탄을 방문해 감명을 받았던 모양이다. 인간은 가난해도, 독재 치하에서도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다. 행복이라는 게 말 그대로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이지 지표를 보고 ‘아! 내가 행복하구나’ 깨닫는 게 아니다. 대통령이 국민을 더 행복하게 느끼게 만들어 주겠다는 데 반대할 이유가 없다. 다만 북유럽 국가 같은 더 좋은 모델도 있는데 왜 하필 부탄식일까 하는 의문은 든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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