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김은경 영장 기각, 블랙리스트 ‘면죄부’ 아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27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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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정부가 임명한 산하기관 임원을 ‘표적감사’하고 후임에 청와대 내정자를 앉히려 한 혐의를 받는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이 26일 법원에서 기각됐다. 수사과정에서 충분한 물증이 확보돼 있고, 김 전 장관이 이미 퇴임해 관련자를 접촉해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주할 우려가 낮다는 이유에서다. 법원은 영장 혐의 내용도 다툴 부분이 많아서 공정한 재판을 위한 방어권 보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 전 장관의 영장이 기각됐다고 해서 이른바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이 무죄라는 뜻은 아니다. 법원 결정은 수사와 재판은 불구속으로 해야 한다는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을 확인한 것뿐이다. 수사와 구속은 사법적 단죄의 절차에 불과하다. 구속만 하면 끝이라는 구태의연한 발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동안 적폐청산 수사에서 검찰은 구속영장을 남발했다. 법원도 여론을 의식해 쉽게 영장을 내준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실체적 진실 규명이라는 형사재판의 목적을 이루려면 불구속 원칙은 최대한 지켜져야 한다.

다만 법원이 영장 기각 사유로 최순실 씨 국정농단 사건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여파로 공공기관 ‘물갈이’ 인사가 필요했었다는 사정을 든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논리다. 법이 아닌 정치적 상황을 영장발부 여부의 판단 근거로 꼽은 것은 불필요한 논쟁거리가 될 수 있다. 전 정권 인사들이 줄줄이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된 무렵에 벌어진 이번 사건에서, 김 전 장관이 본인의 행동이 위법하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는 법원의 판단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검찰은 법원의 결정을 존중하되, 이번 사건의 실체를 밝히겠다는 수사 의지가 약화되어서는 안 된다. 김 전 장관의 영장에서 신미숙 대통령균형인사비서관을 공범으로 적시한 만큼, 신 비서관을 비롯한 청와대 윗선의 개입 여부를 끝까지 밝혀야 한다. 혹시라도 법원의 영장 기각을 계기로 수사의 적극성을 잃는다면 검찰은 ‘살아있는 권력’에 약하다는 오명을 벗지 못할 것이다.
#김은경 영장 기각#환경부 블랙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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