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네 대통령 운명 엇갈린 5월 23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24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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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사는 대통령 영욕(榮辱)의 역사다. 화려한 출발과 불행한 마감, 그러다 시간이 흘러 재평가된다. 특히 1997년 첫 수평적 정권교체 이후 10년 만에 보수정권으로, 다시 9년 만에 진보정권으로 바뀌면서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극상에서 극하로 엇갈리는 역사를 목도한다. 영광과 치욕의 이 역사는 언제까지 되풀이될 것인가.

어제는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세 전직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한꺼번에 국민 앞에 모습을 드러낸 하루였다. 국민들은 저마다 마음 깊숙이 밀려오는 안타까움 속에 전직 대통령들을 떠올렸고, 이런 복잡한 감정 속에 당선 2주를 맞은 문 대통령도 바라봤을 것이다.

고인이 돼 8주기를 맞은 노 전 대통령은 친구이자 비서실장이던 문재인의 대통령 당선과 함께 정치적으로 복귀했다. 극단적인 선택으로 불행하게 삶을 마감한 노 전 대통령의 과거는 이제 ‘노무현의 꿈’으로 다시 태어났다. 사실상 ‘당선 신고’를 위해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추도식에 참석한 문 대통령은 “노무현의 꿈은 깨어있는 시민의 힘으로 부활했고, 우리를 여기까지 오게 했다”고 말했다.

“무직입니다.” 피고인 신분으로 법정에 선 박 전 대통령 입에서 처음 나온, 재판부 인정신문에서 직업을 묻는 질문에 대한 짧은 답변이었다. 그는 국정 농단의 주범 최순실 씨와 나란히 피고인석에 앉아 뇌물 혐의 첫 재판을 받았다. 예전처럼 올림머리를 고수했지만 서툴게 만진 흔적이 역력했다.

여기에 또 다른 전직 대통령도 정치적 논쟁의 한복판에 서게 됐다. 4대강 사업에 대한 문 대통령의 감사 지시가 나온 뒤 이명박 전 대통령은 혀를 차며 헛웃음만 지었다지만, 측근들은 반발한다. 노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감정의 앙금이 만든 ‘정치 감사’ 아니냐는 의구심을 지우지 않고 있다.

이들 전직 대통령은 취임하면서 한결같이 어느 정파의 수장이나 지지자들의 지도자가 아닌 ‘모든 국민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이들이 불행한 대통령, 논란의 대통령이 된 것은 자신만이 옳다는 판단 아래 국민의 뜻을 거스르고 제대로 소통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독선’ 때문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우리 현대사를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역사’로 규정하는 편향된 역사 인식 아래 국정을 좌파이념의 실험장으로 만들었다. 거꾸로 박 전 대통령은 “좌파를 척결하지 않아 나라가 비정상이 됐다”며 블랙리스트 작성 같은 음습한 권력 남용을 저질렀다. 이 전 대통령은 ‘한반도 대운하’ 공약이 반대 여론에 직면하자 이 계획을 철회했지만, 여론수렴이 부족한 채 개발연대식 대규모 토목사업에 대한 미련을 끝내 버리지 못했다.

문 대통령은 어제 “이명박·박근혜 정부뿐 아니라 김대중·노무현 정부까지 지난 20년 전체를 성찰하겠다”며 성공을 다짐했다. 노 전 대통령 추도식 참석도 대통령으로선 마지막이라며 “앞으로는 가슴에만 간직하겠다”고 했다. 노무현 시대도 역사에 넘기고 그 좌절을 타산지석으로 삼겠다는 뜻이다. 역사의 엄중함에 대한 경각심을 임기 내내 잃지 않길 바란다. 그래야 불행한 역사도 되풀이되지 않는다.
#5월 23일#노무현 전 대통령#문재인 대통령#이명박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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