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없는 스쿨존… 아이들은 매일 ‘죽음의 도로’를 걷는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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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 사망자 2000명 줄이자/시즌2]<9> 청주-광주 초등생 사망사고 현장

20일 동아일보 교통안전팀 기자와 교통안전공단 전문가들이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사무소 근처 스쿨존에서 어린이 보행안전 실태를 점검하고 있다. 이곳은 15일 초등학생이 시내버스에 치여 숨진 곳이다. 차도에 어린이보호구역과 제한속도 30km를 알리는 문구가 선명하다. 청주=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20일 동아일보 교통안전팀 기자와 교통안전공단 전문가들이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사무소 근처 스쿨존에서 어린이 보행안전 실태를 점검하고 있다. 이곳은 15일 초등학생이 시내버스에 치여 숨진 곳이다. 차도에 어린이보호구역과 제한속도 30km를 알리는 문구가 선명하다. 청주=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보도(步道·인도)가 있어야 할 곳에 주차장이 있습니다. 주차장에 차량들이 서 있으면 아이들은 차도를 걸을 수밖에 없어요.”

20일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사무소 근처에서 한 시내버스 운전사가 털어놓았다. 이곳은 15일 배정규(가명·10) 군이 시내버스에 치여 숨진 현장이다. 편도 1차로의 좁은 길이다.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이지만 등하교 때 아이들이 걸어 다닐 최소한의 공간조차 없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교통 전문가와 함께 사고 현장을 찾았다. 운전사의 과실 여부를 떠나 도로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실종된 보도 △불법 주정차 △좁은 차도 등 통학안전을 위협하는 3대 원인을 현장에서 찾아냈다.

○ 보도 없는 스쿨존은 ‘킬링 존’


사고 지점 바로 옆 주차장 한 곳에는 정규 군을 추모하며 친구와 주민들이 놓고 간 과자와 음료수, 빨간 우산이 함께 있었다. 양옆에는 하얗게 칠하다 만 18L 용량의 식용유 통이 있었다. 통에는 ‘보도 주차금지’라고 쓰여 있었다. 근처 인력사무소에서 일하는 임휘택 씨(65)는 “(너무 위험해서) 이렇게라도 표시를 해놓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설치했다”고 말했다.

정규 군은 하굣길에 사고를 당했다. 사고가 난 곳은 스쿨존의 끝자락이다. 보도가 끝나는 곳에서 약 8.8m 떨어져 있다. 사고 지점을 포함해 주변 약 10m 구간은 목욕탕 주차장이다. 주차를 2열로 할 수 있어 주차장이 가득 차면 사람이 걸을 수 있는 공간은 30cm가 채 안된다.

사고 지점을 포함해 약 50m 구간은 한쪽 도로엔 아예 보도가 없었다. 사고 지점 반대편 도로 옆엔 폭 1m의 보도가 있었다. 성인 1명이 겨우 걸을 정도의 폭이다. 그마저도 10m가량 걸으면 폭이 절반으로 줄었다.

현장을 점검한 교통안전공단 충북지사 백승엽 안전관리처 차장은 “중앙선과 차선이 벗겨진 곳이 많아 차량들이 뒤엉키면서 도로 가장자리로 향하면 보행자는 무방비”라고 말했다.

사고 지점은 편도 1차로 차도 3개가 만나는 삼거리다. 가장 넓은 차도의 폭이 3m 남짓이다. 좁은 곳은 2.25m. 도로교통법상 차도의 폭은 최소 2.75m 이상이 돼야 한다. 일반 시내버스가 지나가면 여유 공간이 거의 없다.

옥산면사무소 앞은 학원과 병원 상가가 몰려 있다. 각 건물 앞에는 불법 주정차 차량이 점령하고 있다. 이날도 사고 지점 근처의 한 편도 1차로에는 반경 약 10m 안에 차량 8대가 불법 주차 중이었다. 차량 사이로 어린이가 불쑥 나오면 대형사고로 이어질 위험이 커 보였다. 버스 종점까지 있어 쉴 새 없이 드나드는 버스도 어린이들에겐 심각한 위협이다.

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이번 사고는 버스 운전사가 삼거리에서 전방을 보지 않고 다른 쪽 차량을 먼저 살피다 사고를 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교통안전공단 충북지사 황용진 안전관리처장은 “사고 차량의 디지털운행기록계(DTG)를 분석한 결과 사고 시점에 운전자가 3초간 브레이크를 밟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3초 정도면 어떤 부딪힘 때문에 반사적으로 제동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현재 운전사는 사고 당시 정규 군 충격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다.

○ 광주 스쿨존 사고현장도 ‘판박이’

정규 군이 사고를 당한 날 광주 북구 오치동에서도 조모 양(7)이 집으로 가던 중 차량에 치여 숨졌다. 조 양이 숨진 곳도 스쿨존이었다. 이곳 역시 ‘보도 실종’이 사고의 한 원인으로 꼽혔다. 20일 사고 현장을 둘러본 하태준 전남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사고가 난 스쿨존 보도는 한쪽 방향만 설치돼 있거나 끊기는 등 미로처럼 복잡해 초등학생들이 헤맬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하 교수는 사고 지점 주변의 편도 1차로 400m 구간이 내리막길이라 과속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사고 구간은 광주 북구 문흥지구에서 전남대 후문 방향으로 오가는 차량이 시간당 평균 400∼500대에 이른다. 사고 지점 인근 초등학교 옆 편도 1차로는 제한속도가 시속 30km다. 하지만 이날도 시속 50∼60km로 운행하는 차량들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스쿨존 횡단보도 인근에서 안전봉을 들고 스쿨존 지킴이 봉사활동을 하고 있던 김종선 씨(78)는 “스쿨존 운행 차량 중에는 시속 100km에 가깝거나 심지어 추월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해당 구간에는 과속방지턱 3개만 설치돼 있는 등 교통안전 시설물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하 교수는 “인도를 양쪽으로 만들어 과속과 불법 주정차 차량을 단속하고 과속단속 카메라도 설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청주=정성택 neone@donga.com / 광주=이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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