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이야기]마른 겨울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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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환 아시아하천복원네트워크 의장 대진대 교수
장석환 아시아하천복원네트워크 의장 대진대 교수
최근 일반 국민이 잘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심각한 사회 문제가 하나 있다. 겨울철 가뭄이다. 현재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물이 부족하다. 이 상황이 지속되면 봄철 영농기에 많은 피해가 예상된다. 이미 전남 완도군 등 8개 시군의 9716가구, 1만8524명에게 비상급수가 실시되고 있다.

작년 한 해 전국 강수량은 967.7mm로 평년 1307.7mm의 74% 수준이다. 특히 최근 3개월 강수량 56.2mm는 평년의 52%에 그치고 있다. 영동지역의 강수량은 7.7mm로 평년의 20% 수준에 불과하다. 기상청에 따르면 2월까지 현재 수준의 강우가 예상된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3월부터 농업용수가 심각하게 부족할 것이다.

물을 공급하는 남부지역 댐의 상황도 심각하다. 경남 밀양댐 저수율이 25.6%, 충남 서북부 용수 공급을 담당하는 보령댐도 27.5%의 저수율을 보이고 있다. 전남지역 저수지의 평균 저수율은 60%에 불과하다. 상습 가뭄 발생 지역인 전남 신안, 완도 등은 가뭄 장기화로 일부 섬에서 제한급수가 이뤄지고 있다. 강원 영동지역의 삼척은 비상급수 지원을 실시하고 있다. ‘마른 겨울’ 현상이 이어지면 식수 고갈은 물론이고 산불 위험이 높아진다.

가뭄에는 세 종류가 있다. 단순히 비가 예년보다 적게 오는 ‘기상학적 가뭄’과 물이 부족해서 토양에 수분이 말라 농사를 짓기 어려운 ‘농업 가뭄’, 그리고 댐 하천 등에서 인간 생활에 필요한 용수를 공급하기 어려운 ‘사회경제적 가뭄’이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댐 하천에서 공급되는 생·공용수 위주의 정책 때문에 대도시 특히 수도권의 사회경제적 가뭄은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반면 전체 용수의 약 65%를 차지하는 농업용수 공급에는 취약하다. 비가 적게 오는 기상학적 가뭄이 발생하면 조선시대의 천수답(빗물에만 의존하여 벼를 재배하는 논) 정도인 농업용수 공급 시스템은 위기에 빠진다. 넘쳐나는 수도와 생수를 쓰고 있는 대도시, 특히 수도권의 국민들은 가뭄으로 고통받는 농어민들의 심정을 실감하지 못한다.

우리나라 가뭄의 역사적 기록은 조선시대 승정원일기와 일성록에 기록돼 있다. 세계 최초의 강우량 측정기인 측우기의 강우 자료들이 1777년부터 1907년까지 수록돼 있다. 고문서를 통해 복원한 기존 측우기 강우 자료와 현대 기록(1908∼2015년)을 분석한 결과 1901년, 고종 39년 역사상 가장 큰 가뭄이 있었다.

조선 말기인 1886년부터 시작된 극심한 가뭄은 1889년까지 4년간 지속됐다. 이어 1893년부터 1895년까지 극심한 가뭄이 이어졌다. 또다시 1899년부터 1904년까지 6년간 역사상 가장 극심한 장기 연속 가뭄을 겪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 시기 조선의 운명은 외부 열강의 각축 속에서 버티는 동시에 연속된 가뭄에 피폐해진 농업으로 배고픔과 싸워야 하는 이중고에 내몰렸음을 짐작할 수 있다.

겨울 가뭄은 한파나 폭설보다 훨씬 피해가 크고 심각하다. 그 피해는 도시보다 농어촌, 부자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중된다. 그래서 ‘물 복지’가 필요하다. 최근 정부의 물 관리 일원화를 두고 기대와 우려가 공존한다. 공급보다 수요 관리와 분산형 효율을 통해 가뭄에도 안전한 생·공·농 용수를 공급하는 물 관리 선진화를 기대해 본다.

장석환 아시아하천복원네트워크 의장 대진대 교수
#겨울철 가뭄#강수량#마른 겨울#가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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