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이야기]뫼르소는 왜 방아쇠를 당겼나?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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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나라 재단법인 기후변화센터 커뮤니케이션실장
한빛나라 재단법인 기후변화센터 커뮤니케이션실장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에서 주인공 뫼르소는 현기증 나는 더위에 자제력을 상실하고 살인을 저지른다. 그날의 더위는 ‘태양이 모래밭에 수직으로 꽂히고 바다에 반사되는 햇빛이 참을 수 없을 만큼 강렬하여 열기 때문에 숨을 쉴 수가 없는 지경’이었다.

작년 여름 한반도에 유례없는 폭염이 닥쳐 많은 사람이 ‘전기요금 폭탄’을 맞았다. 너무 더워서 에어컨을 켜지 않을 수 없었고 전기요금 누진제 때문에 실제 쓴 것보다 몇 배의 요금을 물었다는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불만은 어디론가 터지는 법이다. 하루 최고기온이 33도 이상인 날이 22일을 넘어섰던 작년, 폭염에서 시작된 불만은 한전을 상대로 한 법적 소송으로 이어졌다.

그나마 에어컨이라도 있어서 더위를 피할 수 있었다면 다행이다. ‘돈 없는 사람은 더워 죽으란 말이냐’는 불만이 터져 나왔듯 소득 수준에 따라 우리가 폭염을 견디는 방법에는 눈에 띄는 차이가 있었다. 폭염, 폭한, 슈퍼태풍 등 이상기후 현상이 앞으로 더욱 빈번해진다면 치솟는 수은주만큼이나 뜨거워진 서민의 분노가 어디로 향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미국 남동부를 강타했던 허리케인 ‘카트리나’와 ‘어마’의 생존자들을 대상으로 심리건강을 연구한 보고서에 따르면 생존자들은 하루아침에 가족과 집, 직업을 잃으면서 심각한 상실감과 상대적 박탈감, 사회적 소외감을 경험했고 분노조절장애, 우울증, 만성 긴장 등 심각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겪을 확률이 매우 높았다. 특히 노약자와 환자, 노숙인, 저소득층 등 취약계층에서 그 피해가 더욱 컸다.

기후변화는 적응력의 정도에 따라 피해의 크기가 다르게 나타나며, 이런 ‘상대성’은 기존의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잠재적 사회 갈등을 촉발하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 슈퍼태풍, 폭염 등 이상기후 현상이 단순한 기상 현상으로 끝나지 않고 갈등과 분열을 일으키는 의외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소설 ‘이방인’에서 그날의 ‘폭염’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숨을 쉴 수 없는’ 더위는 뫼르소가 방아쇠를 당기게 만든 계기를 제공하지만 동시에 살인을 저지른 그의 행동이 어떤 합당한 동기가 없었음을 보여주는 극적 장치이다. 범행 동기를 말해달라는 요청에 뫼르소는 ‘태양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대답하지만 법정 안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 폭염은 그를 효과적으로 죄인화했다.

‘이방인’에서 폭염이 범행 동기로 인정받지 못했듯 이상기후 현상이 사회 갈등과 분열을 촉발한 동기로 인정받을 수 없다. 모든 문제의 책임은 결국 우리에게 있다. 그렇지 않다면 ‘태양’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뫼르소와 다를 바 없지 않은가. 기후변화의 부정적 영향을 줄이기 위해 최선을 다해 적응력을 키우는 것 역시 우리 몫이다. 더워지는 지구에서 해수면의 상승, 생물다양성의 파괴, 토지 침수와 염수화 등 기후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적응력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법정에 선 뫼르소에게 선고된 사형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빛나라 재단법인 기후변화센터 커뮤니케이션실장
#알베르 카뮈#이방인#전기요금 폭탄#기후변화#이상기후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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