光州 동곡초 유상귀 공모교장의 ‘마지막 봉사’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8월 31일 03시 00분


코멘트

전교생 43명이던 학교 3년만에 95명으로…
“분교로 전락 소문 퍼져 부임 첫 날 신입생 1명
눈 앞이 캄캄했었는데…이젠 더 못받아 미안”

유상귀 교장(윗줄 가운데)은 분교설까지 돌던 동곡초교에 부임한 지 3년 만에 재학생을 43명에서 95명으로 늘렸다. 30일 전북 익산시에 캠프를 간 아이들은 “담임선생님이 누가 됐으면 좋겠니”라는 질문에 “교장선생님요”라고 답했다. 익산=최혁중기자sajinman@donga.com
유상귀 교장(윗줄 가운데)은 분교설까지 돌던 동곡초교에 부임한 지 3년 만에 재학생을 43명에서 95명으로 늘렸다. 30일 전북 익산시에 캠프를 간 아이들은 “담임선생님이 누가 됐으면 좋겠니”라는 질문에 “교장선생님요”라고 답했다. 익산=최혁중기자sajinman@donga.com
아직도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머릿속이 하얘졌던. 입학식장에 학생이라고는 달랑 1명만 보였다. 12월까지만 해도 12명이 입학할 예정이었는데. 9명은 도시 학교로 갔다고 들었다. 그럼 나머지 2명은? 입학식 연락을 못 받았다고 했다.

걱정이 밀려왔다. 첫 교장생활, 여기서 잘할 수 있을까. 유상귀 교장(58)이 2009년 광주 동곡초등학교에 부임한 첫날은 이렇게 시작됐다.

동곡초는 20여 년간 교장과 교감이 1년∼1년 반 간격으로 바뀌었다. 말 그대로 거쳐 가는 학교였다. 새로 지어 시설이 좋은 학교가 많은데 이런 시골에 오지 않으려는 건 당연했다. 동곡초는 개교 당시 전남 광산군에 생겼다. 이 지역이 1990년대 광주로 편입됐지만 지금도 학교 주변은 논밭이어서 시골학교나 마찬가지다.

교장이 자주 바뀌니 학교는 발전하지 못했다. 학생 수가 급격히 줄었다. 전교생이 2008년에 67명에서 2009년에는 43명으로. “동곡초가 분교가 된다”는 이야기가 주민들 사이에서 나왔다.

유 교장이 공모를 거쳐 동곡초에 왔다. “우리도 4년 임기 교장을 가져보자!” 학부모들은 경영철학보다 공모교장이 임기를 꼭 채우고 간다는 게 좋았다.

부임하고 나서 유 교장은 우선 방과후학교를 활성화했다. 시골이라 주변에 학원이 없어 피아노를 못 치는 아이가 많았다. 26개 강좌를 개설했다. 바이올린 음악줄넘기 회화 디자인 공예 컴퓨터 로봇과학 한자 무용. 학생들은 매일 오후 5시까지, 일주일에 적어도 12개씩 수업을 듣게 됐다.

수강료는 무료다. 2009년 ‘사교육절감형 창의경영학교’로 선정되면서 정부지원금을 받기에 가능했다. 광주시교육청이 농촌형학교 지원금까지 줘서 학생들은 전혀 부담이 없었다.

동곡초의 모든 프로그램은 이렇게 공모를 통해 만들었다. 유 교장과 교사들이 정부 공공기관 기업에 지원서를 낸 덕분이다. 그 덕분에 체험학습 프로그램은 다양해졌다.

예를 들어 모든 학급이 텃밭에 고구마 조 수수 기장 고추 호박 옥수수 블루베리를 기른다. 농협과 농업기술센터의 ‘텃밭 가꾸기 사업’ 공모에 당선되면서였다. 지난해 전교생이 전남 나주에 1박 2일로 캠프를 갔을 때는 농림수산부가 지원했다. 2박 3일의 스파 체험비는 한국스카우트연맹에서 받았다.

광주시교육청은 4년째 스쿨버스를 지원하고 있다. 전까지는 3∼4km 떨어진 산길, 심지어 4차로 국도를 따라 30분∼1시간씩 걸어서 통학하는 학생이 허다했다.

학교가 달라지면서 전학 문의가 잇따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2009년 12월이 다가오자 유 교장은 불안했다. 입학예정자가 12명이라는데 또 도시로 가버릴까 봐. 학교 근처 식당에서 신입생 학부모 간담회를 열었다. 학부모회장, 학교운영위원장, 교사들이 학교 자랑을 늘어놓았다. 결과는 대성공. 다음 해 3월 13명이 입학했다.

입학생은 작년에 18명, 올해는 13명이었다. 동곡초 근처에 살다가 도시 학교로 떠났던 아이들이 돌아왔다. 도시에서 30분 이상 통학하면서 오겠다는 학생까지 생겼다. 올해 재학생은 95명. 전학을 오고 싶다는 전화가 요즘도 매일 여러 통 걸려온다. 유 교장은 “너무 감사하지만 지금으로선 더 받을 수가 없다. 길이 좁아 큰 스쿨버스를 운행할 수 없고, 교실을 더 늘릴 수 없다”며 이해를 구한다.

이제는 학부모와 교사들이 걱정한다. 유 교장이 6개월 뒤면 떠나니까.

유 교장은 말했다. “아이들이 순수하고 예뻐서 정말 행복했습니다. 열성적인 교장선생님이 오셔서 동곡초가 계속 잘됐으면 좋겠습니다.”

광주=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동곡초#유상귀 교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